슬기로운 유배생활 in Michigan
아이들이 처음 학교에 갔다. 집 근처 5분거리이고 아본데일 재단에 속해 있는 우드랜드 초등이었다. 학교는 아기자기하고 예뻤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교장선생님이 참 좋아보이셨다. ESL선생님이 한국분이셔서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반겨주셨다. 온지 3년이 된 아빠까지도 긴장하게 만드는 첫 등교였는데 한국분이 계셔서 얼마나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던지...
둘째는 기질이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아이이다. 무언가를 시작할때면 일단 안한다고 얘기해놓고 받아들이기까지 관찰하고 시뮬레이션 해보면서 많은 시간을 들여야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이다. 한국에서는 성당유치원에 다녔기에 그런 기질과 잘 맞았다. 규율이 엄격하고 정적인 곳이라 우리 아이에게 딱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미국 유치원이라는 공포의 도가니속으로 아이를 밀어넣어야만 했다. 끝까지 엄마 손을 놓지 못하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마냥 큰눈을 깜빡이지도 못하고 교실로 사라진 아이.
반면 첫째는 관종이다. 검사를 해보진 않았지만 얘는 딱 엔프피이다. 호기심도 많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관심받는 걸 즐긴다.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구경난 듯 모두 모여 쳐다보고 있으니 연예인이 된 듯 싫지않은 눈치이다. 게다가 같은 동네에 사는 또래 한국인 여자아이가 같은 반에 있어 친구 도움을 엄청 많이 받는 것 같다. 하나라도 잘 지내서 다행이다.
첫 등교를 마치고 하교할 때 아이를 찾으러 갔더니 점심때 보라고 도시락에 써놓은 편지를 주머니에서 꺼내며 대성통곡을 한다. 엄마 편지 보고 눈물이 났단다. 얼마나 보고 또 보고 했던지 반나절만에 쪽지가 꼬깃꼬깃해졌다. 네모도 접어보고 하트도 접어보고 하면서 계속 봤단다. 아이고 딱해라.
둘째날은 더 심했다. 둘째날까지만 내가 픽드랍을 한다고 분명 얘기했는데 둘째 담임이 스쿨을 태워보낸것이다. 집까지는 5분거리, 스쿨은 30분 정도가 걸려서 다행히 내가 받을 수 있었지만 아는 사람 하나없는 곳에서 누나도 없이 분명 엄마가 태우러 온댔는데 버스를 왜 태우는지 한마디 반항도 못하고 낯선이들에게 끌려가 30분이 지옥같았을 아이는 내리자마자 다리를 풀고 서럽게 울어댔다. 살아온 인생이 고작 5년 조금 더 된 아이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공포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이후 아이는 스쿨도 타기싫고 유치원도 가기싫고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만 한다.
둘째를 부둥켜 안고 매일 밤을 운다.
익숙한 곳에서도 한가지만 낯설면 거부감을 느끼는 아이인데 가족말고는 익숙한 것이라고는 없는 낯선 곳에 나몰라라하고 내던진 것은 아닌지 나를 찾겠다고 아이를 잃는 건 아닌지 너무 안타깝고 미안하다. '나아질거야' '돌아보면 성장해있을거야' 나조차도 확신을 가질 수 없는 믿음을 불어넣어가면서 아이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건지. 아직 일주일도 안 됐는데 이 시간이 하염없을 것 같아 이게 맞는건지 의심하고 또 의심하게 된다.
나에게도 믿음 빠진 주문을 외워본다. 나아질거야. 곧 괜찮아질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