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유배생활 in Michigan
말을 괜히 뱉은 것이지...
다음 고난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여기와서 그렇게나 잘 먹던 첫째아이가 먹을 것에 욕심을 내며 우걱우걱 먹어대던 다음 날 아침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고 열이 난다. 어지럽고 매스껍다길래 급하게 먹던 모습이 생각나 급체인 것 같아 굶고 아이상태도 보려고 학교에 결석한다고 메일을 보냈다. 두끼를 꼬박 굶고 아이가 피골이 상접하여 힘이 없어 아무것도 못하길래 죽을 끓여 먹였는데 이내 다 토해버리고, 진정하고 먹은 백초시럽마저도 들어가자마자 토해버렸다. 오후가 되자 아이 상태가 더 심해서 열이 39도 넘게 올라갔다. 체한게 아닌가보다 싶어 코비드 자가진단을 하고 다른 곳을 체크했지만 이상이 없다. 배가 너무 아프고 힘이 없단다. 먹은 건 다 토해버리고 물만 마시니 힘이 없을 수 밖에 없다. 영화한편을 볼까 바람 좀 쐬면 나을까 권유해봐도 아무것도 하기싫단다. 무슨 마지막 입새의 한 장면 처럼 창가 소파에 누워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밤이 되니 상태가 더 악화되어서 애가 배가 아파 끙끙 앓았다. 얼전케어를 갈까하다가 처음이라 한국 병원이 나을 것 같아 30분거리의 한국병원을 예약했다. 이미 예약하기엔 늦은 시간이라 다음날 11시가 가장 빠르다. 동네 엄마들한테 병원가려면 의료 보험을 챙겨야한다고 익히 들었더랬다. 보험카드를 들고 갔는데 병원이랑 계약이 안되어있다고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귀동냥으로 들은 얘기들을 모아 보험카드를 챙기고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적용되는 보험사인지도 알아보았다. 예약을 마치고 아이를 밤새 닦아주다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니 낯빛이 시커매진 아이가 아파죽는다. 이러다 정말 애가 어떻게 되는건 아닐까 겁이 덜컥났다. 한국이었으면 어제 아침에 바로 병원가고 약먹고 끝이었을텐데 왜 여기에서 이 고생을 하는걸까 아이가 아프면 비난의 화살을 내 스스로 나에게 돌리게 된다. 아이가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더니 설사를 두번 하고는 힘이 없어 스르르 다시 잠에 들었다. 병원 갈 시간이 되어서 아이를 깨웠더니 너무 개운한 얼굴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표정이 밝아진 아이가 병원가는 길이 막 가볍고 그렇다. 하씨... 병원비도 비싸다던데 가지말까...
병원에 도착하니 익숙한 풍경이다. 한국어 한국사람 한국인테리어. 아이가 마음이 편하단다. 그래, 나도 그래. 아이가 괜찮아졌어도 예약은 했으니 진료는 볼 참이었는데, 보험카드만 가져와서는 안되고 주치의로 지정이 되어있어야 보험이 적용된단다. 하... 병원 가기가 이렇게 어려웠던 건가요... 어쨌거나 진료는 못 봤지만 아이가 나았다. 쫄깃해진 채로 며칠을 보낸 내 심장도 긴장이 이제야 풀어진다.
먹었던 걸 소상히 떠올려보니 냉동 딸기를 갈아놓고 먹었던 것이 탈이 났나보다 딸기를 싫어하는 둘째랑 다르게 먹은 건 그것박에 없었다. 냉동식품은 세균이 잘 번식한다는거 알면서 두고 먹인 내가 잘못이다. 독한 세균이 아이를 괴롭히다 변으로 나오고 나서는 깨끗이 나았나보다. 아이는 이틀을 꼬박 굶고 내놓고 삼일째 저녁에서야 온전한 식사를 했다. 영어 못해도 괜찮고 다 괜찮으니까 아프지만 마 라고 했다.
하아... 이게 또 말이 씨가 되었지. 입조심하자 진짜...
누나 없이 씩씩하게 학교가던 장한 둘째가 콧물이 점점 심해지더니 열이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날씨가 추운날이었는데 리세스 시간에 두번이나 놀이터에 나가 놀았다 한다. 추워서 놀기싫어서 가만히 있었단다. 그래서 더 추웠고 오한이 들었나보다. 집에 온 아이가 연신 '추워 추워' 하는데 몸이 불덩이이다. 다른 데 아픈데는 없다는데 열이 39도가 넘는다. 첫째 때 이틀씩이나 고생을 했던지라 코비드 검사부터하고 얼전케어로 바로 향했다. 30분을 기다려 각종 검사를 하고 진료를 보았다. 급하니 간호사가 하는 말도 막 알아듣겠고 대답도 막 잘 나온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가 강해지는 법이지. 어렵게 본 진료인데 돌아오는 대답이... 감기란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왔다. 그래서 처방은? '비타민 먹고 쉬어' 끝?! 진짜 끝이예요? 열이 39도가 넘는데요? 주사는요? 아니 처방전은요? 항생제는요? 하다못해 해열제는요? 하아.... 왜 왔니 병원... 괜한 외출이었지. 저녁바람을 쐬어서인지 밤이 되니 40도가 넘게 열이 났다. 미지근한 물로 쪼그려 자는 아이를 닦이고 마트에 가서 해열제를 사서 먹여보았지만 열이 39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자다깨다를 반복해 닦여서 일까 나을때가 된거일까 아침이 되니 37.8로 열이 떨어졌다. 학교도 갈 수 있겠단다. 휴 다행이다. 하지만 항상 방심은 다음 고난을 가져오지. 3일동안 밤에 열나고 아침이면 떨어지는 걸 반복했다. 이튿날은 39.4도까지 올랐다가 37.4도 3일째는 38.8까지 올랐다가 37.1도 3일을 꼬박 고생시키고는 열감기에서 벗어났다. 일교차가 20도가 나고 갑자기 더웠다 추웠다하니 이 날씨를 견디기 힘들었을테다. 로컬 아이들은 이 10월에도 민소매를 입었다 후리스를 입었다 하던데 감기 안 걸리고 어째 잘 버티는지 모르겠다.
일주일만에 한국병원 얼전케어까지 모두 경험했다. 아 엄마로서는 지옥까지 경험했다.
느낀 점 몇 가지는
1. 병원갈 때는 가입된 보험회사가 어딘지 알아야하고 가고자 하는 병원과 연계되어있어야 한다. 주치의 지정도 되어있어야 한다. 약국도 한국처럼 병원 옆에 없다. 미리 어느 약국에서 약을 받을 건지 생각해놓고 가야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므로 영업시간이 긴 마트 약국으로 정하는 것이 좋다.
2. 외상이 아닌 이상 얼전케어의 도움을 기대하지 말자.
3. 아프지 말자. 한국처럼 병원가고 항생제 먹고 끝나는 거 아니다. 개고생이다.
길거리에 할머니고 젊은이고 왜 그렇게들 뛰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아프면 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