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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기록 덧붙임. 빨간 코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는 아니었는데

by 그린제이

빨간 코.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

브런치북으로 2024년 기록을 묶으려 했더니 목차가 10개 필요하네요.

그래서. 부록 같은 페이지.


2024년 어느 날 문득 빨간 코.

시작은 이러했다.


빨간 코를 만난 날의 이야기.


자기 안에 무언가를 많이 묻어두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사람을 떠올리다가 문득 ‘빨간 코 광대’가 떠올랐던 모양이다.

동그란 얼굴에 빨간 코 뭔가 심심하니 모자를 씌워주고 정장을 입혀본다.

그러자, 옷장 가득히 같은 색의 셔츠와 정장이 걸려 있고 그 옆칸에 가지가색의 모자들과 다양한 크기의 빨간 코들이 놓여있는 그림을 떠올리며 이 사람의 패션 아이템은 모자와 빨간 코인 걸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내가 아닌 것이 됨으로 진짜 내가 된다니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아?”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빨간 코가.


스케치북 위에서는 토스트를 먹으려는 빨간 코가 그려지고 있다.

“먹을 때 모자정도는 벗어도 되지 않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내가 말을 건넸다.


빨간 코는 말이 없이 토스트를 먹기 시작했고

그걸 보면서 나는 어쩌면 빨간 코와 모자에 익숙해져서 혼자 있을 때도 그걸 벗지 못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추측했다.


그러자 빨간 코가 토스트를 한입 먹고 커피도 한 모금 마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빨간 코를 하는 순간 사람들은 나를 잊고 ‘빨간 코를 한 사람’을 인지해. 그러면 이상하리만치 내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보는 기분이 들거든. 그러면 오히려 매우 솔직해져. 왜냐면 그들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빨간 코를 한 사람’을 보는 중이니까. 그래서 무슨 짓을 하던 본래의 나에게 마치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 뭐 둘 다 나이긴 하지만 조금 다른 나라고나 할까.

사람들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고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듣는 경향이 두드러지니 크게 상관은 없어.

다들 솔직함을 원한다고 하지만 진심으로 진실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드물거든. 그게 가장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본인이겠지. 보통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네거티브하다고도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 오히려 반대지.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는 마음을 가지면 꽤 편안하거든.”


나는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고

굳이 그렇게까지?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 것 같았다.


빨간 코의 동그랑 얼굴이,

때때로 바뀌는 모자가,

큰 덩치와는 간극이 있는 제스처에 왠지 마음이 갔다.



이것들을 별그램에 올렸을 때 몇 가지 댓글이 기억납니다.

'빨간 코'하면 광대를 떠올리고 광대를 떠올리면서 모두 슬픔으로 이어지더군요.

저는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응? 그렇게 쉽게 연결된다고?

조커의 영향일까요?

예전에 보았던 영화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가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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