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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제이 Sep 29. 2021

소곤소곤 - 사진과 일기의 기록 차이

이미지와 텍스트의 간극

나는 20대까지 매우 열심히 일기를 썼었다.

그것은 어릴 때 만들어진 약간의 습관 같은 것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연말쯤 내년에 쓸 일기장을 사고 그것의 첫 장을 쓰는 것이 새해 첫날 하는 일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날짜가 띄엄띄엄하더니 1년에 몇 번 쓰지 않게 되고 일기장을 따로 사지 않게 돼버렸다.

먼슬리 다이어리에 짧은 기록만이 남아있는 상태. 그것도 대부분 일과 관련 있고..

이제는 그것마저 온라인으로 기록한다.


궁금한  찾아보려 옛날 일기장을 뒤적였다.

그리고…

'이걸 언제 태워버리지?'라는 아주 진지한 고민이 생겼다.

세상에 내가 없을 때 누군가가 이것을 본다고 생각하니 당장에라도 불쏘시개로 쓰고 싶은 마음이다.


일기 속의 나는 대부분 조금 슬펐다.

물론 아예 행복한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일기만 보자면 뭔가 불행하고 고민 투성이었다.

약간의 괴리감이 내 일기장에서 느껴졌다.

본래 일기장은 반성문이었던가??


내게 기억하는 그때는 그렇게까지 슬픈 일이 많았나 의문이 들 정도로 즐거운 기억들이 더 많이 남아있거든.

미친 듯이 사랑했던 기억도 있고 처음 떠난 해외여행의 기억도 있고 재밌는 일이 많았었다.

물론 지독히 힘든 때도 섞여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10대, 20대 때는 모두 미친 듯이 존재론적 고민을 하는 때가 아니던가?


반면, 사진으로 남아있는 그때는 평화롭다. 즐거움이 가득하다.

하긴 보통 슬플 때 사진을 찍을 일은 없으니깐.. 그럴 만도 하지.


만약에 내가 기억을 잃었다고 치고

나를 찾기 위해 지난 일기장을 보면 나는 아주... 불행했구나 싶을 것이고

사진만 봤다면 나는 아주 행복했구나 싶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애는 뭔가 싶겠지.


이미지와 텍스트의 기록 차이가 이렇게나 간극이 심하다니 살짝 의외였고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정신상담에 그런 처방이 있다고 한다.

하루에 셀피 20장씩 찍기.

대부분 셀피를 찍을 때 미소를 짓는 경우가 높으니깐

웃는 자신을 찍는 것만으로도 불행지수를 조금은 낮출 수 있는 모양이다.


왜 텍스트에는 슬픔이 더 많은 것일까?

굳이 생각을 해보자면 아마도 너무 행복한 날은 그 마음만으로도 풍족해서 그냥 잠드는 것이 쉬웠을 것이고

슬픔은 조금이라도 풀어보고자 글로 남겨진 것은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른다.


매일 같이 그림을 한 장씩 그리고 있는 요즘

나중에 보면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어떤 기분이 들까?


intsagram 매일 매일 드로잉 @wizanne_ar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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