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때

by Green

밤 잠 뒤척이게 무덥던 며칠이 지나고 이젠 창문 열고 자는 것만으로도 꽤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왔다. 체온이 번져 뜨뜻한 온기를 머금고 있는 토퍼 위로 창 밖의 시원함이 스며들 때 느꼈다. 곧 입추겠구나.


그 말은 여름만의 청량함도 곧 끝이 날 거라는 것이기에 사실 조금 아쉬웠다. 뜨겁고, 습하고, 전반적으로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계절이긴 해도 한 여름만의 매력을 즐기는 방법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만의 여름을 즐기는 방법 8가지를 정했는데, 아직 못한 게 이렇게나 있는 걸!

1. 시원한 곳에 누워 떠가는 구름 보기

2. 제철 과일로 화채나 아이스크림 만들어 먹기

3. 햇빛을 등불 삼아 책 읽기

4. 운동 후 찬물로 뜨거운 열기 씻기

5. 개울가에 발 담그기

6. 반짝이는 풀잎 바라보기

7. 바다를 보면 주저 없이 퐁당하기

8. 숲 속 그늘에서 향기 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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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못다 한 몇 가지는 미뤄 가을에 하고 싶진 않은 마음이라 처서가 오기 전까지 유예해야겠다. 그리곤 진짜 가을의 시원함이 물씬 느껴지는 때가 오면 그때에 가을을 즐기는 방법을 세우더라도. 입추는 어쩌면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드는 때라기 보단, 여름과 가을을 이어주는 때라는 말이 더 어울리니까.


위의 목록을 끝까지 해내고 싶어 유예하기 위한 핑계였지만, 입추를 맞이하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주 다행이라는. 개성이 강한 4계절이 순간의 변화도 다가오지 않고 이처럼 스며드는 기간을 줘서. 조금은 유연하게 다음 변화를 받아 들 일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한 절기, 한 절기를 살아가다 보면 살아가지는 거겠지 싶다.


무더위 같은 혹독한 분노에 휘말리지 않고, 즐기는 법을 찾고

낙엽 지는 쓸쓸함에 잠식되지 않고, 단단히 나를 지키고

매서운 추위에 마음이 건조해지지 않고, 넉넉히 사랑하며

봄과 같은 변덕스러움에 익숙해지지 않고, 반짝이는 정체성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그러니 오늘 내게 말하고 싶다. 너무 아프지만 '약간의 시원함을 느껴보라'고. 그리고 나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겐 '오늘 하루를 살아보라'고. 그러다 보면 우리에게도 행복하고 달콤한 달고나 향이 감싸는 가을이 오리라 믿어본다. 그리고 겨울도, 다음 봄도 또 다음 능숙하게 보낼 여름도. 그렇게 붙들며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언제든지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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