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초능력이 생긴다면 어떤 초능력일까, 아니 지금 이미 내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이번 주에는 어떤 글을 써볼까? 고민하는 내게 던져진 주제, '초능력이 생긴 뒤 나의 하루는?' 비현실적인 주제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현실에서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된다는 STOP 사인을 많이 경험했던 터라, 일어나지 않을 가정을 하고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은 듯했다.
며칠 전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온도 능력(?)을 가졌다는 아이를 만났다. '식물, 속삭이자'라는 프로그램은 식물을 오감으로 느껴보고 떠오르는 감각과 경험을 글로 적어보는 원예와 문학을 접목시킨 프로그램이다. 글쓰기를 한다고 하면 아이들은 우선 겁을 먹는다. 말하는 것과 글 쓰는 것 중에 선택하라 하면 한치의 고민도 없이 말하기를 택한다. 그러나 막상 단어, 한 문장, 세 문장으로 글쓰기가 진행될수록 시끌벅쩍한 아이들은 자신의 연필을 꽉 쥐고 식물을 보고 떠오르는 감정을 담는다. 그리곤 우리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되, 비난하지 않는 식물에게 자신의 속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는데, '라고 시작하면서.
첫 질문(해당 식물을 보고 떠오르는 의성어 또는 의태어 적기)에 대한 글을 적을 땐 모르겠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마지막 질문(오늘 만난 식물에게 편지 쓰기)에 가서는 어린아이들에게 이런 깊은 생각이 나오다니, 이렇게 솔직하다니! 하며 감동과 감탄이 나오곤 한다. 이번에 만난 아이들도 그랬다.
자신의 소중한 친구가 이사 가고 나서 대화 나눌 사람이 없어지면서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말로 상처 주고 있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뽀로로(모든 참가자를 각자 지은 별명으로 부름), 스위스의 수도를 몰라서 창피했었다는 해, 그리고 자신의 온도를 마음대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는 기모찌.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아이를 보며 솔직히 속으로 웃었다. 어린애니까 그런 생각할 수 있지, 하면서.
돌아보니 지금의 나는 스스로에 대한 가능성이나 능력을 높게 여기지 않았던 듯하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나름대로 신박한 아이디어를 들고 가도 거부당하기 십상이었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걸 일부로라도 막아서는 사람들 때문일 수 있다. 그래서 이번 글의 주제를 마주했을 때, 비웃음 또는 쓴웃음을 지었을지도. 내겐 초능력이라 하는 비범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초능력은 없지만 소중한 능력, '소능력'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에 묻혀있던 나의 자아가 말한다. 나에게 남들보다 말랑거리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의 감정을 섬세히 파악하곤 하고, 작은 것으로 고마움을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무심한 듯 섬세하게.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말보다, '지친 하루 중에 쉬어가는 하루 보내세요'라던가, 어제보다 행복한 하루, 몸도 마음도 따뜻한 하루를 축복하기도 한다.
다시 처음의 주제로 돌아가서, 내게 초능력이 생긴다면? 아마 그 능력만을 비범하다고 여기고 그것을 활용하는 하루를 보낼 것 같다. 하지만 초능력이 생기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이미 내게 있는 능력을 찾아보니 더 흥미로운 듯하다.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초능력이 없으니 이러한 소능력들 모두 알고 보면 비범하단 것이다. 나는 이미 말랑한 소능력이 있었다. 며칠 전 만난 온도 능력을 가진 아이같이 나의 능력을 비범하게 여기는 태도를 가지고 그 능력을 활용해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보내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