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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Feb 26. 2022

ㄱㅂㅌ, 침묵의 식사

'저는 엄마 아빠를 엄청 사랑하는데, 부모님은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갈비탕부터 사서 가봐'


 엄마뻘되는 직원이 내게 알려준 부모님을 향한 사랑 표현 1단계다. 

횡성에서 근무하는 나는 그 흔한(그러나 비싼) 소고기 한번 부모님께 대접한 적이 없다. 기껏해야 한우 전골, 도가니탕 정도?

이전까지 '말 안 해도 내가 사랑하는 것쯤 알겠지?' 나름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쉬는 날이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매주 꼬박꼬박 만나고, 나의 일과를 재잘재잘 떠들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종종 내가 독립하면 그들을 찾지 않을 거라고, 돌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안 그래도 건강이 약해진 듯한 엄마를 위해 갈비탕을 포장해가리라! 일찍 퇴근해서 회사 근방에서 제일 맛있다고 생각되는 매장에 들러 포장받아 3시간을 걸려 집으로 갔다. 달리는 차 안에서 육수의 짭조름한 향을 맡으며 가족과 함께 웃으며 식사할 것을 그려보았다. 바람에 따라 맡아지는 자극적인 맛에 잠깐씩 침이 고였다. 


 부모님을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사실, 나도 갈비탕이 먹고 싶었다. 많이. 유난히 감정적으로 힘든 한 주를 보내느라 퇴근 후에는 이불속에서 나오질 않았다. 제대로 된 저녁 한 끼 먹지 못했던 터라 갈비탕을 보는 것만으로 기대가 됐다. 




 부모님 퇴근 시간에 맞춰 육수와 고깃덩이 등등을 냄비에 넣고 뜨뜻하게 데웠다. 약간 으쓱했다. 자연스럽게 엄마는 다른 반찬을 꺼내 주셨고 아빠는 수저를 놔주셨다. 오손도손 이제 맛있게 먹을 일만 남았다.


 침묵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갑자기 엄마 아빠 간의 감정이 상하더니 고개를 홱 돌리고는 수저를 치웠다. 그리고는 각자 자신의 공간으로 흩어졌다. 항상 혼자 밥 먹게 두지 않는 아빠도 안 먹겠다고 하고, 엄마도 나중에 사 먹으면 되지라고 하고, 무조건 엄마를 따라 하는 동생도 입맛이 없단다. 함께 웃으며 식사할 것을 기대하며 달려온 3시간이 무너져 내렸다. 가족에게 기분 좋은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던 마음과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포장해온 갈비탕의 의미가 보통의 갈비탕과 다를 바 없어진 듯했다. 


다 같이 먹지 않으면 무슨 의미일까 싶었지만, 나를 위해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주일 중에 이날만큼은 밥 한 끼 제대로 먹고 싶었다. 그렇게 다시 차려진 상에서 홀로 먹는 갈비탕은 그렇게 맛없을 수 없었다. 특별한 날이면 종종 먹던 갈비탕의 뜨뜻함과 맑고도 진한 그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큰 대접에 얼굴을 박고 급하게 쑤셔 넣었다. 배만 채우고 방에 들어가야지. 


그 모습을 본 아빠는 갈비탕을 담아 옆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드셨다. 

그리고 곧 방에서 나와 엄마도 갈비탕을 담아 오셨다. 

따라쟁이 동생도 같이 앉아 우리는 조용한 저녁식사를 했다. 전혀 이런 일로 울고 싶지 않은데 눈물이 찼다. 티 나지 않게 눈물이 쏙 들어가기를 바라면서 고개를 박고 계속 먹었다. 나를 위해 앉아있는 것 같았다. 내 성의를 생각해서 또는 내가 마음 아플까 봐 그랬으리라. 엄마는 물에 빠진 고기가 싫다고 하셨지만 이거는 맛있다며 두 그릇을 드셨다. 


긴 대화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곁에 앉아있는 것 만으로 마음이 닿는 듯했다. 순간 미웠던 마음이 부드러운 고기처럼 잘 넘어갔다. 덕분에 저녁 내내 재잘거렸다. 망한 줄 알았던 갈비탕 식사가 다시 회복하게 도왔을지도 모른다. 역시 이런 날엔 따뜻하고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 감정이 상하더라도 같이 밥 먹는 건 좋은 거 같다. 아무 말 않더라도 곁에 있는 것도. 그리고 끼니는 거르지 말아야겠다. 나라도 날 챙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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