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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Feb 12. 2022

ㄱㄴ를 좋아했어요.

 사실 특별함 이상이었다.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알고 영향을 미치는 정말 중요한 인물이라고 말했지만, 그 이상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날 좋아한다는 이유로 멀어지고 싶지 않았고, 그녀가 세상에서 받아온 상처를 비슷하게라도 나는 주고 싶지 않았다.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충분히, 아니 넘치게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녀 말고 다른 남성과 시간을 보낼 때에도, 그 남성과의 인간관계는 끝나도 무관하지만 그녀와는 평생 가까이 지내고 싶었다. 끝내 이어지지 못하고 스페셜했던 우리의 관계가 정리될 때 나는 무척이나 아팠다. 오랫동안이나 이별의 감정을 느껴야 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 이 글을 기록하기 직전까지도 헷갈렸다.




 그녀와 겨울부터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을 보내면서 좋아하는 감정을 분명히 느꼈다.

인간적으로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친하게 지내면서 좋은 영향을 받았다. 나로서 살아있음, 창조적이고 깨어있음, 활력 있음을.  


훌쩍이는 나를 발견하는 사람이었고, 내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웃게 해 주었다. 지쳐있는 나에게 각종 특별한 것들로 출근에 기대감을 주었으며, 꼬라지 피우며 옳고 그름을 논하는 내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서로의 생각을 밤하늘의 별을 볼 때까지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상대였다.

퉁명스럽게 대해도 낮은 자세로 이야기를 들어주며, 어려움 생길 때는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해결책을 가져다주곤 했다. 재미주의자인 나의 재미를 위해 이것저것 발맞춰주고 나를 위해 먼 거리도 서슴지 않고 오가는 뜨거운 사람이었다. 내리막에서 돌돌이를 타고 달리다가 경계석에 정강이를 쓸려왔을 땐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눈 밭에 드러누우려 하면 겉옷을 단단히 여며줬다. 그 사람의 사랑방식이 내게 퍼즐처럼 쏙 잘 맞았다. 그런데 어떻게 안 좋을 수가 있었을까.


당시에도 고백했고, 지금도 말할 수 있다. 내 인생의 여성은 한 명뿐이고 더 이상의 그녀(와 같은 존재)는 없을 거라고. 어느 순간부터 그녀를 좋아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28해를 살아온 나의 정체성을 다시 바라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성별이나 장애유무, 생김새 등 각종 보이는 것들에서 자유롭게 친구해왔기에 그녀도 어느 순간 스며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좋아하고 보니 내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사람이 여성이었을 뿐이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우리의 관계를 정의하길 바랐고 그 시간 후에 여러 일과 감정을 겪으며 거리를 둬야 했다. 그녀와 무관한 나의 삶을 살고 있는대도 그녀는 내 무의식에 자주 찾아왔다. 격해진 감정으로 서로를 대하고 미워하게 된 상황에서 자주 떠오르는 그녀 생각은 마침내 그녀를 끊어내고 싶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내 인생에서 그녀와 같은 사랑을 주는 사람은 다시없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의 아픔을 수용하고 가장 잘 아는 사람을 내 삶에서 빼놓을 수도 없었다.




 한동안 진행한 심리상담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자라면서 불안정하게 형성되었던 엄마와의 애착이 그녀에게 반영되었다는 것. 내가 부모-자식 간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바라고 있다는 것. 꽤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인정하게 됐다. 그녀가 내게 보여준 사랑의 방식은 돌봄과 무조건적인 관심이었다. 리더십과 카리스마 있는 강한 여성과 잘 어울리는 엄마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울어도 되냐고 묻지 않고 내 감정을 솔직히 비춰도 괜찮은 사람이었고, 누구도 아닌 내게 먼저 관심을 주는 사람이었다. 아마 첫째여서 그랬을까, 특히나 장애 있는 동생이 있어서? 나는 스스로도 철이 들다 말았다고 생각하는 편이긴 한데, 채워지지 않은 감정의 부분을 완벽히 채워주는 사람을 만났던 거다. 마냥 어린아이처럼 굴고 싶었고 그녀 앞에선 초딩이 되어도 괜찮았다. 그렇게 내게 인상적이고도 필수적인 존재로 남게 되었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정서적으로 분리를 시도하고 있다. 어쩌면 진작에 분리되었을지도 모르나 틈틈이 올라오는 어리광은 내 존재의 문제인가. 그녀를 알아가는 시기였던 재작년 이 계절이 되니, 따뜻하고 싱그러운 기억들이 떠오른다. 나도 모르던 정체성에 눈을 뜬 게 아니라 바라던 엄마의 모습이 반영된 사람이라서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하더라도 그녀를 좋아했음은 사실이다. 그리고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사랑으로 가득 찬 경험을 했음도.


이 글을 쓰는 게 잘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누군가 쉽게 판단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며 생각이 많아질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의 이야기를 계속 적어보려고 한다. 나의 인생은 소중하니까, 거짓 없이.

보이지 않아도 혼자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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