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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Jan 14. 2023

식사라도 챙겨야 다닐 수 있는 회사

도시락은 촌스럽지만 그걸 드는 나는 좋아서

 나름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살고 있는 시골 동네에는 퇴근 후 쉽게 갈 수 있는 음식점이 없고 당연한 것 같은 배달 어플도 되지 않는 그런 곳이다. 해 먹지 않으면 저녁 거르기 일쑤다. 그리하여 장만한 에어프라이어. 요리에 흥미 없는 나였기에 에어프라이어의 필요성을 느껴보질 못했다. 가스레인지 있고 전자레인지 있으면 됐지!라고 생각해 왔다. 사실 그 조차도 자주 이용하지 않는다. 에어프라이어 구매의 목적은 그렇고, 활용은 굽기를 예상한다. 배송 전부터 대형마트까지 나가서 설레며 장을 봤다. 요리는 못해도 장 보는 것은 재밌었다. 특히 신기한 제품이 많았다. 시골동네 마트와는 차원이 다르다랄까. 그러나 막상 사온 재료는 감자, 가지, 토마토, 상추...? 동네 마트를 갔어도 됐을 뻔했다. 그래도 무항생제 소시지를 사 왔으니 됐다.  


이것저것 비교해 보고 선택한 브랜드 에어프라이어가 도착했다. 생각보다 컸지만 에어프라이어 둘 자리를 둘러보고 깨끗하게 닦고 뿌듯하게 올려놓았다. 처음 한 것은 감자와 가지 굽기. 채소로 일주일 예행연습을 해보고 이번 주, 고기를 사 왔다. 마트에서 내가 먹기 위해 고기를 산 적이 있던가 싶다. 누군가 추천해 준 오리고기를 들고 와 구워보았다. 두구두구 보기만 해도 든든한 에어프라이어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매일 신기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이곳 현실을 투정하고 속상해하면서 거르거나 김밥을 사 먹던 저녁시간이 이제는 무엇을 해먹을지 행복한 고민이다. 


아침은 특별히 뭘 만드는 건 아니지만 샐러드와 과일, 요거트 등을 준비한다. 삼단 도시락가방에 이것저것을 쌓는다. 자랑할만한 한 끼는 아니지만 거르지 않는 게 뿌듯하고 무엇이든 아침거리가 있어 든든하다. 회사에 늘 대던 주차자리를 다른 팀장에게 뺏기고 난 후로 사무실과는 떨어진 안내실 앞에 주차를 한다. 매일 안내실 선생님들과 밝고 짧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출근한다. 늦었다. '꼴찌, 빨리 뛰어가'라는 말에 왜 그리 신나는지 도시락을 들고 쫄래쫄래 뛰어갔다. 매일 아침 출근과 동시에 도시락을 꺼내서 조용히 냠냠 먹는데 가끔은 근무시간에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쉬는 시간과 심지어 점심저녁시간도 보장되지 않는 이곳에서 담배도 커피도 하지 않는 나에게 이 정도 시간은 주어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무튼 즐거운 아침식사다. 이것으로라도 나를 챙기며 회사생활을 할 수 있으니 한 결 낫다. 


나처럼 살기 위해 되는대로 먹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요리에 쓰일 도구를 사보는 게 어떨까, 아니 더 쉽게는 장을 봐 보자! 아무거나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맛은 덜해도 즐겁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마음 아픈 날에는 그냥 누워있고 싶지만, 당분간 그렇게 마음 아플 일이 있지만 그래도 이 글을 보며 잊지 말고 나를 잘 먹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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