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힘들지만 위로할 수 있는 나니까
현명한 사람은 힘들 때 내가 아니라 남을 생각해요.
퇴근 시간에 듣는 라디오에서 금희언니가 말한다. 그래, 내가 그랬지 하면서 스스로 다독인다. 오래 살진 않았지만, 다양한 형태의 경험을 한 건 아니지만 몇몇 가지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겪고 나니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었다.
자차 없이는 출퇴근할 수 없는 산골에서 입사 초 4개월간 차를 가진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움직였다. 그들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 차를 조심스레 다루고, 감사 표시를 하고, 갑작스레 틀어진다면 급하게 다른 이들에게 부탁하기도 해야 했다. 그런 눈치를 당연하게 여기며 불편한 내색하는 사람도 있고, 필요할 때 언제든 말하라며 먼저 손 내밀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성격을 닮은 듯한 차를 여럿 타보면서 내 차가 생겼을 때 결심했다. 나를 태워준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 그대로 생색내지 않고 편하게 태우겠노라고. 그렇게 차가 없는 직원들과 저녁을 먹는 날이면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30분이 늦어지더라도 그들의 관사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늘 상기한다. 웃으며 태워주었던 배려의 사람들을.
5년 이상 만난 남자친구와 이별한 직장동료가 있다. 그 동료는 내가 연애상담을 할 때면 '똥차가 가야 벤츠가 온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 '뭘 고민해? 당장 차단해' 등등등... 그런 조언(?)을 했었다. 그때에 나와 다른 가치를 가졌다는 생각에 소신대로 하기도 하고, 동료의 말대로 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답은 내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그리고 그녀가 반대의 상황이 되어 나를 찾을 때 그냥 들었다. 그리고나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며 건넨 말은 '네가 하는 생각도, 드는 마음도 다 네 거야. 너를 먼저 안아주면 좋겠어. 네 마음이 편한 대로 선택해, 난 널 응원해'였다. 이 말은 그 시절 내가 듣고 싶었던, 한 발짝 내딛을 수 있게 스스로에게 한 말이었다. 상실에는 훈계가 아닌 위로가 필요함을 안다. 그녀가 한 층 더 성숙해져 가는 거 같다.
최근 보청기를 삽입한 이모에게 아주 보잘것없지만 나의 치열수술이 공감대를 형성했을까. 수술 전까지 두려워했을 이모가 걱정이었다. 수술을 하고 나면 몸에 남은 흔적을 바라보는 것은 더욱 공포였을 거다. 그리고 수술한다고 '불행 끝, 행복 시작'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기에 수술 전만큼의 관심을 가지고 싶었다. 그렇게 몇 번의 대화가 이모에게 조금은 위안이 되었길 바란다. 치열수술 후에 칼 댄 흔적이 부풀어 오르고 소양증으로 4개월간 잠 못 들어 피폐했고 아직도 때때로 약을 복용하는 사람으로서 무어든 쉬운 것은 없음을 안다. 내게는 엄청났지만 누군가에겐 고작 치열수술인데도.
보이기엔 그저 그런 일 같아도 각자에겐 그렇지 않다. 그래서 힘들 때 느꼈던 고통을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했나 보다. 고통을 겪은 만큼 나를 현명하다고 인정하는 거 같아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그래, 내가 그랬지, 현명하다 할 정도로 꽤 잘 살고 있는 거야. 맞아 나 그런 사람이었어.' 라디오 속에서 흘러나온 말이 스스로 연약하고 아픈 사람으로 여기던 때에 나를 만나 세웠다.
산을 넘어 또 다른 산을 만나더라도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기냐고 원망하기보단 이미 겪은, 겪고 있는, 겪게 될 이들을 생각하고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