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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Jan 29. 2023

이직한 너도, 이직하지 못한 나도

잘 지내보자

 이번 주는 최근 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영화와 그에 어울리는 식물을 소개하려 했으나 오늘 만난 소중한 친구를 기억하고자 다음 주로 발행을 미룬다. 



2년간 같은 팀에서 극과 극이나 불통의 아이콘인 두 팀장과 일한 내 동료, 도심에서 살다 산골 생활을 하는 것이 괴로웠던 그녀, 외모와 성격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많아서 누가 보아도 제일 친하다했던 친구 같은 동생을 만났다. 그녀가 퇴사한 지 한 달만이다. 드디어 산이 아닌 지하철이 다니는 곳에서. 


그녀는 내가 원치 않게 팀을 옮기고 고된 회사생활을 할 때 웃게 만들어준 동료이자 친구였다. 서로 함께면 직장인이 아닌 중고등학생이 된 것마냥 낙엽만 굴러도 까르르거렸다. 둘이면 항상 떠들썩하게 웃고 장난치고, 불통하는 조직문화에 분통 터뜨리기 일쑤였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없는 날이면 사무실은 조용했다. 대신 우리 둘의 메시지 창에는 내가 없던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잔뜩 남겨져 있곤 했다. 


사진은 따뜻한 기억을 담고 있다 해서...

좋아하는 만큼 서운함도 있었다. MBTI에서 T인 그녀는 F인 내게 너무나 현실적인 위로를 하곤 했다. 당시에 나는 '남일처럼 쉽게 생각한다'라고 판단했다. 채워지지 않는 공감에 투덜거려도 그녀는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오해가 쌓여 팀원들에 대한 기대도 사라져 결국 3개월 병가를 들어가게 될 때도 그녀는 본체만체하였다.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서운함은 병가가 끝나 돌아가서까지 남아있었다. 그러나 또다시 웃으며 재잘거리는 서로를 보며 알았다. 우리는 그저 표현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그걸 되새기고 나니 나뿐 아니라 그녀도 내게 섭섭했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에게 있어서 최선의 공감을 몰라줬으니, 친하다면서 말없이 쓰윽 병가 들어갔으니 말이다. 




종종 우리는 반드시 횡성을 탈출해서 퇴근 후 문화가 있는 삶을 살자고 독려했다. 가끔은 1년, 2년, 10년 뒤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서로가 세운 계획에 남이 보기엔 웃을, 우리끼리는 진지한 조언을 하면서. 그리고 정신과 육체노동의 절정을 찍고 내려올 때 우린 최적의 기회를 노렸다. 그것이 우리의 희망이었고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다. 그녀는 좋아하는 백화점으로, 나는 좋아하는 수목원으로. 


그리고 같은 시기, 발표가 났다. 그녀는 그 주에, 나는 2주 뒤에 횡성을 떠나는 것으로. 현재 그녀는 집 앞에 있는 백화점에서 인턴을 마무리하고 있다. 반면 나는 안타깝게도 회사 간의 문제로 발령이 취소되어 아직 횡성이다. 이 부분은 나중에 자세히 기록할 테다...


그녀에게 들은 새로운 회사 이야기는 거의 장점으로 들렸다. 

- 백화점 FnB에서 일하면 (매일 바쁘지만) 매일 먹고 싶은 음식점에서 법인카드로 먹고 마실 수 있다.

- (주말에 일하기도 하지만) 저녁에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 (순환근무지만) 지방 발령 나면 KTX와 숙박비용을 상당히 지원한다.

- (센 민원이 종종 있지만) 불필요한 서류 업무가 없다.

- (특정 직무에서는) 워케이션도 할 수 있다 등등. 


그냥 뭐 나랑 다른 세계 이야기였다. 

- 먹는 음식은 직원식당의 뻔한 메뉴(이름만 맛있어 보인다.)

- 퇴근 후 문화생활은 불가(가능한 운동은 걷기)

- 해발 850m에 영하 25도가 일상적인 그런 곳, 그럼에도 오지수당이라곤 월 3만 원인 곳(제설하고 쓸 파스값이라도 주면 좋겠다.)

- 10원 지출에도 필요한 절차가 하나, 둘, 셋. 서류는 또 얼마나 많이 필요하게.

- 22년 기준 재택근무 0회

불과 한 달 전 우리는 같은 삶을 살았는데 이제는 너무나 다르다. 그녀의 달라진 삶을 축하한다. 그러나 나는 왜인지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직이 두려운 건 아닌데.  


...따뜻한 기억을 남긴다.

'퇴사는 지능순'이라는 말을 들었다. 고집불통 팀장과 날로 늘어가는 목표 달성을 위해 갈리는 상황을 욕하면서 나는 왜 아직도 이 회사에 있는 걸까. 스스로 어느 곳에서든 환영할 스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의 능력을 높게 평가한다. 그럼에도 어디로 옮기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하는 일이 좋아서. 사람들의 필요에 맞춰 프로그램을 만들고 직접 운영하며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가끔이지만 나의 따뜻한 말로 인해 웃음 짓는 게 좋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아무 해 없는 자연을 보는 것이 행복이다. 자연 요소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이면지에 그려보다가 뇌 회로가 번뜩이는 창의성, 창조성에 희열을 느낀다. 마치 글을 쓰는 것처럼. 





그녀가 원한 100%의 직장은 아닐 수 있지만 탈출하고 싶던 이유가 현재는 거의 해소된 듯 보인다. 앞으로의 삶도 만족할 수 있기를 응원한다. 그녀가 퇴사함으로 업무가 늘어날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대신 그녀를 마음껏 축하하였듯이. 그리고 나의 삶도 기쁨이 더 많아지길 축복한다. 무려 얻은 게 병이라는 생각이 드는 회사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이곳이 좋다. 



당하고도 이 생각하는 걸 보면 지능이 낮은 거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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