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이 책의 시선은 타인으로부터 전달받았다

대니얼 J. 레비틴 "정리하는 뇌"

by 오지현

나는 꽤 오래전부터 인간의 인지작용에 관심이 있었다.


앎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났을지도 모르겠다. 이름에 知(지)가 들어가는 것도 우연만은 아니게 느껴지니 말이다. 한의학을 전공하면서도 인간의 인지과정인 "心(심)意(의)志(지)思(사)慮(려)智(지)"가 가장 흥미로웠고, 그러한 앎에 대한 갈증은 결국 인지과학 석사과정을 밟게 하였으며, 병원에서도 경도인지장애 파트를 담당하게 하였다.



뇌과학, 인지과학에 대한 관심은 예전에는 일부 전문가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매우 대중적인 관심사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타인(특히 전공자가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에게 흥미로운 인지, 기억, 마음에 대한 책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경도인지장애 스터디> 연재를 마치고, 나름의 책거리 겸 떠난 힐링 여행길에 적당한 기회가 마련되었다.



제주 도두봉에 위치한 '현존'은 독특하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정성스레 꾹꾹 눌러쓴 듯한 쪽지가 현존의 첫인상이었는데, 큐레이터의 일에 대한 열정과 보람이 엿보였다. 책이라는 매개물의 도움을 받아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는, 교과서로만 접했던 집단 상담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때문에 나의 동기가 충족되는 것과 별개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주변에 많이 추천하고 싶다.



기본적으로 음식이 맛있고 책 추천에 센스가 있는, 가장 중요한 아이덴티티를 놓치지 않고 있어서 좋았다. 직접 경험해 보니 이러한 과정들이 심리적 재활과 회복에도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겠다 느껴졌다. 7시부터 시작했으니 9시면 끝나겠지 했는데, 10시 반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진행되었다. 많은 어른들이 동화를 필요로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며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이 날 나는 또 한 번, 누군가에게는 따듯하게,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게,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게 읽힐 수 있는 동화책을 쓰겠다는 마음을 저장할 수 있었다.




타인이 밑줄 그어놓은 부분 중에서, 내가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을 발견하는 것은 무척이나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물론 겹치는 밑줄이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소화하고 해석하는지는 다른 것이다. 심지어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 사이에도 하루마다의 경험과 감정의 차이로 인한 받아들임의 다름이 있을 테니 말이다. 아래의 문단들이 큐레이터와 내가 공통으로 밑줄 친 부분이다.





(11p)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뇌와 그 설계가 지닌 매력적인 속성 두 가지를 만난다. 바로 '풍부함'과 '연상 접근'이다. '풍부함'은 우리가 생각하거나 경험한 수많은 것이 모두 뇌의 어느 곳인가에 저장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연상 접근'은 의미론적 연상이나 지각적 연상을 통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생각에 접근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93p) 무언가를 기억하는 행위는 처음 그것을 경험할 때 관여했던 뉴런들을 다시 작동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96p) 기억의 두 번째 원칙은 감정과 관련되어 있다. 무언가가 우리를 믿기 어려울 정도로 두렵거나,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화가 나게 만든다면 우리는 그것을 기억할 가능성이 높다. 뇌가 그 경험에 '중요'라고 적어놓은 신경화학적 꼬리표를 붙이기 때문이다. 마치 뇌가 노란색 형광펜을 가지고 있어서 머릿속 일기장에서 그날의 경험 중 중요한 부분을 골라 줄을 그어놓는 것 같다.


북큐레이션, 소셜다이닝. 모두 나에겐 낯설었지만, 그런 낯선 자극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신선했다. 지금의 기억을 나중에 회상한다면 과연 어떤 맛과 냄새와 소리와 색감과 온도로 떠오를지, 설레고 궁금한 마음으로 이 기록을 남긴다.




이 책과는 별개로 꼭 기억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었다.


날씨와 감정.


"단 한순간도 똑같은 날씨가 없고, 우리 감정도 그렇다"


너무나 울림이 커서, 잠시 대화를 끊고 레퍼런스를 청했고, 큐레이터 와인설님은 몇 권의 책을 다시 추천 주셨다. 나에게 이토록 큰 울림이 있었던 것은, 내가 그 순간을 나의 뇌에 코딩할 때에, '천인상응, 대우주의 날씨와 소우주의 자아'라는 프리즘으로 투과하여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물론 알고 하신 말씀은 아니겠지만, 수많은 고민과 독서로 다져졌을 통찰력 있는 대사였으리라.


지금의 감탄이 미래의 나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리사 펠드먼 배럿의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87p "똑같은 쿠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박웅현의 『여덟 단어』210p에 적힌 고미숙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글귀 "지구는 탄생 이래 단 한 번도 동일한 날씨를 반복하지 않았다"가 힌트가 되어주길 바란다.





대니얼 J. 레비틴, 『정리하는 뇌』, 김성훈 역, 와이즈베리, 2015. [The Organized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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