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시민

by inome

이서가 자란 곳은 작은 지방 도시였다. 도청 건물이 우뚝 서 있고, 멀리 대학병원의 불빛이 안정감을 주는 곳이었다. 겨울이면 하얀 눈이 조용히 쌓여 골목마다 포근한 적막을 덮었다. 한옥과 기와로 치장한 전통시장 골목에서는 오래 끓여온 국밥 냄새가 하루 종일 공기 속을 맴돌았다.

엄마와 아빠는 시장 어귀에서 작은 편의점을 했다. 불이 꺼질 새 없는, 365일 24시간 내내 운영하는 가게가 곧 그들의 삶이었다. 그래도 봄과 가을이면 잠시 알바를 두고 들판으로 나갔다. 알바라 해봐야 교회에서 자주 보던 믿을 만한 이웃 아주머니였다. 그때만큼은 장사도 세상도 잊은 채, 흙냄새와 바람 속에서 숨을 돌렸다.

오빠는 어렸을 때부터 달리는 걸 좋아했다. 언제나 어깨와 등을 따라 땀이 흘렀고, 셔츠는 축축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금세 마를 것 같다가도, 곧 다시 눅눅해져 피부에 달라붙었다. 가끔은 무릎이나 정강이가 까져 붉은 피와 굳어가는 딱지가 도드라졌다. 신발도 옷도 오래가지 못했다. 오빠에게는 진한 냄새가 났다. 어쩌면 그가 얼마나 거칠게 움직였는지 말해주는 흔적이었다.

이서에게도 할 일이 있었다. 여름이면 창고 앞 그늘에 얼린 생수병을 늘어놓았다. 아침에 꺼낸 병을 옆에 두고 잡초를 뽑았다. 정오가 되면 병은 반쯤 녹아 있었다. 손에 닿으면 차가웠다. 그때 한 모금을 마셨다. 단순히 갈증만 가시는 건 아니었다. 여름이, 그대로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집안을 흔들던 소란스러운 기척이 자취를 감췄다. 부엌을 지나도, 계단을 올라도, 더는 흙 묻은 발자국이나 축축한 셔츠 냄새가 따라오지 않았다. 아무도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고, 묻지도 않았다. 오빠가 집을 비운 것은, 그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던 무렵의 일이었다. 그 후 집은 조용했다. 문을 닫는 소리도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가족들은 각자 제 할 일을 묵묵하게 해냈다.

이서의 삶은 모나지도, 특별히 빛나지도 않았다. 그녀의 하루는 어제를 조심스레 옮겨 적듯 흘러갔고, 내일 역시 그 복사본처럼 닮아 있었다. 그 반은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유 없는 불안이 찾아오곤 했다. 문득, 어쩌면 자신의 삶이 다 써 내려간 노트의 마지막 여백 같다고 느꼈다. 그 여백 위에 같은 글자를 무의식처럼 반복해 적는 것. 잔잔했지만 어딘가 허무한 느낌.

벗어나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 한다는 분명함은 없었다. 다만, 집이 아닌 다른 곳이면 충분했다. 그래서 노력했다. 다행히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 사실 꼭 서울일 필요는 없었다. 그저 조금 더 뚜렷하게, 조금 더 빠른 호흡으로, 어쩌면 아주 미약하게라도 심장이 두근거릴 수 있는 삶을 원했을 뿐이다.

열아홉 살, 혼자 서울에 간다. 부모는 함께 가주겠노라 했지만 이서는 고개를 저었다. "혼자 해볼게요." 그 말에 부모는 짧게 머뭇거리다 물러섰다. 편의점 문을 닫을 수도, 하루쯤 맡길 사람을 구하는 일조차 번거로웠다. "이서는 똑똑하니까." 그들은 그 말을 핑계 삼아 마음속의 불안을 조용히 눌러 담았다. 이서 역시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기숙사에만 합격했어도 이런 경험은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 밤 이서는 화면에 집중했다. 손끝으로 지도를 훑으며 학교 근처, 자신이 다닐 캠퍼스와 가까운 방들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왠지 믿음이 가는 업체에 상담사에게 톡을 보냈다. '모레 오후 2시에 방문 상담하고 싶습니다.' 답장이 빠르게 왔다. 이서는 표를 예매했고, 가방을 쌌고, 기차를 탔다. 누구의 권유도, 완전히 스스로의 의지도 아닌, 애매한 선택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 엄마는 이서의 손을 꼭 잡았다.

"거긴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들 제멋대로야. 아무도 널 돕지 않을 거야. 네가 스스로를 돌봐야 해."

엄마의 당부는 이서에게 주문처럼 들렸다. 서울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말을 아끼는 것. 그것이 생존의 조건이었다. 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차 안, 이서는 드라마틱한 삶을 상상했다. 특히 옥탑방. 영화나 텔레비전화면에서 자주 보아오던, 낭만 가득한 그곳. 밤이면 도시의 불빛이 멀리서 번져 보이고, 좁은 방 안은 보글보글 라면 끓는 소리로 채워지는, 오롯이 자신의 공간. 계단을 오를 때 숨이 차고, 여름엔 천장이 달아오르며, 겨울엔 보일러가 가쁘게 돌아가겠지만, 이웃엔 잘생긴 사람이 반드시 살 것만 같은. 옥상 평상에서 함께 삼겹살을 굽는 상상. 그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섞이는 모습.

중개사무소는 지하철역 근처 작은 건물에 있었다. 중개인은 태블릿을 넘기며 말했다. "사진은 사진일 뿐이에요. 직접 보셔야 해요." 그의 말투에는 피로와 익숙한 장사 냄새가 동시에 묻어 있었다.

첫 번째 방은 햇빛이 잘 들었지만, 창문을 열자 맞은편 빌라의 창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두 번째는 보증금 오백에 월세 팔십. 방 안에는 곰팡이 냄새가 옅게 스며 있었다. 세 번째, 네 번째를 보며 이서는 이미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검색했던 시세보다 높았다.

이서는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육십팔만 원짜리 방 앞에 섰다. 풀 옵션 원룸이라고 했지만 냉장고는 여기저기 긁혀있었고, 화장실 타일 사이엔 미세한 곰팡이가 번져 있었다. 그래도 학교까지 걸어서 십 분. 창문을 열면 건물 사이로 좁은 하늘이 보였다. 그녀 앞에는 낭만이 아닌 현실이 있었다.

중개사는 태블릿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화면을 돌렸다.
“임대인 명의 깨끗하고, 근저당도 없어요. 요즘은 전자계약으로 다 하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말투는 부드러웠다. 손놀림은 단정했고, 오래 연습한 동작처럼 군더더기가 없었다. 전자펜 끝이 화면을 스치자 얇은 선이 남았다. 중요한 조항마다 짧은 표시가 덧붙었다.

이서는 태블릿을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내용이 한 번에 다 읽히지 않았다. 이름, 금액, 특약. 중개사가 짚는 순서대로 따라가다가도, 다시 위로 올라가 같은 줄을 반복했다. 중개사는 적당한 시점마다 말을 보탰다. 관리비가 어느 정도인지, 전입신고는 어디서 하는지, 보증보험은 어떻게 처리되는지. 가볍고 건조했다. 이런 계약을 수없이 반복해왔다는 걸 숨기지도 드러내지도 않았다.

처음 보는 법률 용어들이 낯설게 줄지어 있었고, 눈으로 따라가면서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고개는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진짜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마지막 서명란이 나타나자 중개사가 스타일러스를 건넸다.

“여기, 이름만 쓰면 끝나요.”

손끝이 축축했다. 땀 때문에 펜이 미끄러질 것만 같았다. 이서는 잠시 멈췄다. 마음속에서 자신을 조용히 다독이며, 결국 이름을 천천히 적었다. 중개사는 태블릿을 덮고, 사본은 곧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그제야 묵직한 월세, 낯선 도시의 막막함, 그리고 새로운 삶이라는 설렘이 찾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긴장은 없었다. 사고가 날 것 같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도 이서를 속이지 않았고, 아무도 위협하지 않았다. 그저 사소한 일상의 한 장면이 지나갔을 뿐이었다. 이상했다. 섣부르게 준비했던 불안과 두려움이었는지 하나도 맞지 않았다.

며칠 뒤, 짐을 풀었다. 첫인상과는 조금 달랐다.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있었다. 벽에는 가느다란 긁힌 자국이 줄지어 있었고, 장판 한쪽에는 무언가 눌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창틀 실리콘은 벌어져 있었고, 냉장고 고무패킹은 누렇게 바래 있었다. 창문을 열면 맞은편 건물 벽이 가까이 서 있어, 그 사이로 겨우 하늘이 보였다. 이 낡음과 막힘은 모두, 누군가가 살아온 흔적이었다.

쓸고 닦고 한참을 청소했다. 손과 팔에 힘이 들어가면서 등과 목이 축축하게 젖었다. 땀이 피부를 타고 흘렀지만, 마음을 식혀주진 않았다. 그제야 이서는 작은 후회와 마주했다. 차라리 탁 트인 전망의 옥탑방이었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했다. 어떤 선택이든 현실은 늘 아쉬움을 남기는 법이었다.

처음 한 달 동안, 이서는 길을 자주 헤맸다. 지하철에서 잘못 내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같은 노선이라도 출구마다 다른 동네가 나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도 마찬가지였다. 내릴 벨을 늦게 눌렀다가 익숙하지 않은 정류장에 내려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편의점 계산대도 처음에는 힘들었다. 동시에 여러 사람이 계산을 하고, 음료나 간식을 집는 속도가 모두 달라서 어떤 동작을 먼저 해야 할지 몰랐다. 알바생은 바쁘게 계산대를 오가고, 손님 사이의 간격을 예측해야 했다. 몇 주 후, 이서는 손을 먼저 내밀고 지갑을 꺼내는 타이밍을 자연스럽게 맞출 수 있게 되었다.

배달 가방과 쓰레기봉투도 낯설었다. 새벽이면 골목마다 배달 가방이 줄을 서고, 옆에는 지정 요일과 동(洞) 스티커가 붙은 쓰레기봉투가 놓였다. 처음에는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잠시 서성였지만, 반복되는 규칙을 보고 따라 하면서 자연스럽게 동선을 익혔다.

장마철에는 지하상가 일부가 젖는 날이 있었다. 물길을 피해 걸어야 했고, 상인들은 젖은 박스를 치우며 통로를 열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몇 번 겪으면서 어떤 길을 선택해야 안전한지, 어느 정도 빠르게 걸어야 다른 사람과 부딪히지 않는지 몸으로 익혔다.

두 해쯤 지나서야 이서는 서울의 생활에 익숙해졌다. 환승역에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 발걸음을 조절하고, 편의점 계산대에서 손을 먼저 내밀며, 배달 가방과 쓰레기봉투를 놓는 위치를 자연스럽게 기억한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처음 서울에 왔을 때부터 살고 있었던 방을 나왔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봐두었던 옥탑으로 이사했다. 계단은 끝없이 이어져 어깨에 멘 가방은 평소보다 묵직하게 만드는 높은 곳. 집에 도착했을 때, 이서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문을 열자 낮은 천장, 얇은 벽, 작은 창문이 그녀를 맞았다. 하지만 가방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세상이 달라졌다. 도시가 한눈에 펼쳐졌다. 건물 사이로 작은 틈들이 모여, 빽빽하게 들어선 서울의 풍경이었다.

여름이 시작되자, 더위보다 소음이 먼저 버겁게 다가왔다. 창문을 닫으면 공기가 막혔고, 열면 경적과 오토바이 소리, 옆집 실외기의 윙윙거림이 한꺼번에 들이쳤다. 새벽 두 시에도, 네 시에도,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잠을 자지 못했다. 밤새 눈은 점점 화끈거리고, 몸을 자꾸 뒤척이며 불편을 토해냈다. 아침이면 작은 일에도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수업 시간에는 집중이 흩어지고, 책상 앞에 앉아도 시간을 흘려보낼 뿐 그 무엇도 하지 못했다. 선풍기 바람은 미지근했고, 머릿속은 언제나 소란스러웠다. 방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책상 위에는 노트와 자료가 쌓여 있었다. 3학년 여름, 이미 반이 흘렀다. 내년이면 취업과 졸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는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가슴속에 박혔다. 더위야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잠을 빼앗기는 건 다른 문제였다. 결국 계약서를 꺼냈다. 일 년하고도 반년이 더 남아 있었지만, 위약금은 감당하기로 했다. 오히려 몇 번 더 이런 밤을 보낸다면, 그 정도 손해는 전혀 손해가 아닐지도 몰랐다.

이서는 그것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요즘 사람들이 한 달 살이니, 일 년 살이니 하며 짧은 체험을 떠나는 것처럼—그녀에게 옥탑은 그런 종류의 시간이었던 셈이었다. 더위와 소음은 견딜 수 없었지만, 그래도 직접 겪어봤다는 사실은 이상하게도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사진 한 장으로 끝낼 장면을, 자신은 몸으로 지나갔다는 생각. 다행히 옥탑방의 기억은 여전히 뜨겁게 남아 있었다.

이제 이서는 오래된 빌라 원룸에 산다. 계약서에는 우습게도 오피스텔이라 적혀 있었다. 하늘이 보이는 그럴싸한 창문도 있었다. 1층에는 편의점도 하나 있었다. 그래도 가끔 옥탑이 떠올렸다. 짧은 시간도 참지 못할 만큼 불편했지만, 조금은 자유로웠던 기억. 여행지에서 돌아와 사진첩을 넘기듯, 이서의 마음속에 그 짧은 옥탑의 여름이 튀어나오곤 했다.

원룸에도 자잘한 문제는 늘 따라붙었다. 밤이면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소리가 실제보다 무겁게 울려왔다.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는 건물이 가볍게 흔들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옆집 문이 여닫히는 소리도 은근히 신경을 건드렸다. 어쩌면 수십 명 이상의 사람들이 같은 건물에 살고 있었지만, 시선이 마주칠 일은 좀처럼 없었다. 웃음소리는 더더욱 없었다. 무표정한 공간. 철저히 혼자인 자리였다.

어느 날은 수도꼭지가 새기 시작했다. 관리실에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순서를 기다리셔야 합니다.”뿐이었다. 당장은 해결될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수건을 받쳐 물이 덜 번지도록 하고, 인터넷을 뒤져 임시방편을 따라 했다.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불편을 줄이기에는 충분했다.

대신 말수는 줄었다. 원래도 말이 별로 없었지만, 원룸 생활은 '그냥 알아서 하면 되는' 것들이 많았다. 도시에서 오래 지내다보면 사람들은 대게 같은 모습이 된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서울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고, 시간은 빠듯했다. 그래서 말이 빨랐다. 잘 웃지 않았고, 서로를 오래 들여다보지 않았다. 누군가를 밀치지 않으면 밀렸고,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면 손해를 보았다. 아무도 이유 없이는 지켜주지 않았다.

괜찮았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맞출 필요 없었다. 게다가 집중할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이었다. 그것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낭비가 아니었다. 투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한 편에 속했다. 덕분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오후 세 시, 이서는 얼음 가득한 커피를 빨대로 천천히 휘저었다. 노트북에 몰두한 사람들, 통화하며 웃는 남자 둘,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무언가를 바라보는 여자. 몇 해 전만 해도 이런 풍경 속에 들어서면 위축되었겠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과장된 연극처럼 보였다.

이서는 이제야 그게 어떤 풍경인지 안다. 사람들은 각자 목적이 있는 듯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점점 무의미해지는 자신을 가리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라는 것을. 그들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척, 바쁘게 움직이는 척하며 자신에게 의미를 만들어주려 애썼다. 그녀는 그들 사이에서 대사 없는 엑스트라처럼 조용히 앉아 있는 법을 배웠다. 연기라기보다,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선택한 가장 정직한 방식이었다.

엄마가 틀렸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불친절하다는 정보는 모두 거짓말이다. 오히려 지나치게 친절한 도시였다. 전철은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도착하고,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줄을 선다. 모든 것이 매뉴얼대로 흘렀고, 그 흐름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매끄러웠다. 참 이상한 것은 시스템이 고장이 날 법한데, 절대로 고장 나지 않았다. 누군가 늦을 법한데, 늦지 않았다. 사람들이 화를 낼 법한데, 조용했다.

이서는 가끔 아주 정교하게 조율된 음악 속에, 자신만 반 박자 늦게 들어온 것 같았다. 그럴 때면 왼쪽 어깨 뒤가 간질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누군가가 아무 말 없이, 손가락 하나로 쿡 하고 찌른 듯한 느낌. 정신 차리라는 사전경고 같았다. 이서만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서울은 이서를 거부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위한 자리를 내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늘 어딘가를 배회해야만 했다. 완벽하게 정돈된 세계 속에서, 자신만이 조금 비뚤어진 각도로 서 있었다. 어떻게든 이 시스템의 한 부분이 되고 싶었다. 어긋난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러나 노력할수록, 도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외면했다.

물론 정해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울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꼭 서울의 한가운데일 필요까지는 없었다. 지하철로 40분쯤이면 도착하는 거리라면 괜찮았다. 용인도, 수원도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평택이나 이천은 어딘가 멀게 느껴졌고, 군포나 오산은 처음부터 선택지에 없었다.

실제 거리보다는 마음속 거리감이 더 컸다. 중요한 건 자신이 '서울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버리는 순간, 뭔가 실패한 느낌이 든다는 점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요즘 어디 살아?" 하고 물었을 때, "서울"이라고 대답하면 일단은 편했다. 짧고 간단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사연을 늘어놓는 것 같았다.

그것은 자존심이라기보다 훨씬 더 단순하고 본능적인 감각에 가까웠다. 이서에게 이 도시는 신선한 곳이었다가, 지금은 일종의 생존 조건이 되었다. 도시의 중심은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거대한 자석 같았다. 가까이 갈수록 정보와 기회가 쏟아졌고, 사람들의 표정은 생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중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서서히 느슨해지고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중요한 것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변하는 느낌.

사는 장소가 자신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서울 밖으로 나가면, 왠지 자신이 자신 같지 않을 것만 같았다. 문제는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익숙해진 자신의 내면에 있었다. 아니, 그 부분만큼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선을 넘으면, 더는 자신이 자신이 아닐 것 같았다. 지도 위의 숫자보다 마음속 감각이 먼저 반응한다. 이서에게 이 도시는 단순히 어디론가 이어지는 길이 아니었다. 그곳 자체가, 이미 목적지였다.

그 감정을 딱 잘라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집착이라기엔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불안이라기엔 너무 평범했다. 하지만 분명히, 그것은 이서의 하루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눈에 띄지 않게, 지나치게 꾸미지도 않고, 쓸데없이 웃지도 않았다. 무례하지 않되 친밀하지 않은 거리를 유지하는 것. 약간만 어긋나도, 누군가의 머릿속 목록에서 지워질 수 있었다.

이서는 기회란 늘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법이고, 아래에서 위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버려지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오래 참고, 오래 견디고, 오래 눈치를 봐야 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오래 숨을 참을 수 없는 존재다. 이서도 가끔은 모두가 사라진 거리에서, 건물 유리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곤 했다. 잠시의 멈춤. 나, 아직 괜찮아? 묻는 얼굴이었다. 대답은 없었다. 바람이 차갑게 곁을 지나갔고, 젖은 시멘트 바닥에 밴 커피 찌꺼기 냄새가 어렴풋이 코를 스쳤다.

눈에 띄고 싶지 않은 마음과 누구보다 눈에 띄고 싶은 마음. 그 두 감정은 이서의 안에서 서로를 부딪쳤다. 때로는 억누르기도 했고, 때로는 조용히 손을 잡기도 했다. 스스로도 왜 그런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상반된 충동이 꿈틀거렸다.

취업준비 동아리 발표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서는 최대한 긴장하지 않은 척, 준비는 많이 한 척,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 척을 했다. 하지만 그런 ‘척’들이 얼마나 매끄러운지, 그녀의 머릿속은 쉴 새 없이 점수를 매겼다. 그녀는 이것을 전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그것이, 이 도시를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믿었다.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조차 그냥 넘기지 않았다. 어떤 브랜드의 셔츠인지, 어떤 스타일인지, 그리고 자신이 그들 옆을 지날 때 얼마나 어울리는지, 마음속에서 따져보곤 했다.

그런 감각은 자각 없이 몸에 밴 습관이었다. 마치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물의 무게를 의식하지 못하듯, 이서도 자신이 끊임없이 주변을 의식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다만 가끔, 아주 가끔, 그런 자신을 들켜버릴까 봐 두려웠다. 누군가가 그 마음을 꿰뚫어 본다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았다.

이서는 스마트폰 속 뉴스 피드를 부지런히 내렸다. 어떤 이슈가 오르내리는지, 누가 무엇을 말하는지, 미리 알고 있는 쪽이 나을 것 같았다.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이 대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걸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서는 그 흐름에서 밀리고 싶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존재감이 있는 사람. 보여주지 않아도 감지되는 사람. 한마디로 말해, 그냥 멋진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서울이 중심인 질서 속에서, 아무 일도 아닌 듯 자신을 유지하는 일. 사람들은 보지 않지만, 언젠가는 봐줄 거라는 기대.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방식으로 피곤해지는 하루. 이서는 그 하루를 위해 머리를 감고, 드라이기를 돌리고, 리넨 셔츠를 다려 입는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마음이었다.

그녀가 사는 동네에서 중심지까지는 지하철로 41분이 걸린다. 계단은 낡았고, 비가 오면 조금 불편하고, 맑은 날엔 특별할 것 없이 지나간다. 사람들은 늘 정해진 방향으로 움직이고, 아무 일도 없는 얼굴로 줄을 선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지만,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거대한 도시는 그녀에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건 아주 사소한 것이어서,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이서는 궁금했다. 서울사람이 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서울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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