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러 모으는 게 제 삶의 낙이에요"
커피나 음료를 손으로 들고 다니며 수시로 마실 수 있는 용기 텀블러. 이제는 직장인들의 회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텀블러는 예전부터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된다고 널리 알려져 왔어요. 그래서인지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텀블러를 구매하는 분들도 늘어났죠.
텀블러 사용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며, 카페 전문점에서는 다양한 디자인의 텀블러를 앞다퉈 출시하고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바로 스타벅스 한정판 텀블러 레디백입니다. 여행지에서 텀블러를 기념품으로 사 오고, 한정판 텀블러를 사기 위해 줄까지 서는 웃픈 상황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친환경'이라 생각되는 텀블러 사용이 도를 넘어서면서 오히려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루 평균 7000만 개의 일회용 컵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출근길에 한 잔, 점심시간에 한 잔, 업무 중에 한 잔, 무의식적으로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거죠. 의식적으로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하루 4-5개쯤은 기본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버스 정류장이나 길가에서도 버려진 일회용 컵을 쉽게 볼 수 있는데요. 요즘은 친환경 소재로 만든 일회용 컵도 많지만 겉보기에는 일반 플라스틱과 비슷해요. 그렇다 보니 함께 섞여 배출되게 되고 소각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중량제 폐기물의 절반 이상은 소각되며 매립되는 비율은 3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해요.
소각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처리하는 가장 유해한 방법입니다. 그 이유는 소각 과정에서 다이옥신, 납, 수은 등 독성물질이 방출되기 때문이에요. 방출된 독성물질은 토양이나 하천으로 흘러들어 가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킵니다. 일회용품을 소각하는 양이 많아질수록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요.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1톤의 플라스틱을 태우는 과정에서 1.4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이산화탄소는 지구의 오존층을 파괴하고 온난화를 발생시켜 지구의 온도를 높여요. 빙하를 녹이는 환경오염의 주범이지요. 환경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생산 및 소비가 지금처럼 대량으로 발생한다면 2100년까지 2,870억 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할 것으로 예견했습니다.
사진 한 장이 발단이 되어 사람들은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심각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8년,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이 만든 섬과, 새 알바트로스의 사체에 플라스틱이 가득 들어 있는 사진이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문화가 생명을 죽이는 문화라는 심각성이 알려진 것이죠.
그 이후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일회 용기가 지구상의 생물을 죽이고 환경을 오염을 시킨다는 사실이 각인됐습니다. 때문에, 텀블러가 환경보호의 일환으로 등장하며 불티나게 팔려나가게 된 것입니다. 한때는 텀블러를 들고 커피를 마시면 '나는 개념 있는 사람', '나는 환경을 생각해요'라고 무언으로 비치는 인식도 존재하기도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환경보호를 위해 텀블러를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이 조금 과해지면서 환경보호의 상징과도 같던 텀블러는 지나치게 과소비되고 있는데요.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이유는 텀블러 한정판 출시 때문입니다. 희소성이라는 가치 때문에 마음이 끌리게 되고 구매로 행동이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브랜드 로고가 박혀 있고 매 시즌마다 특색을 강조하는 디자인이 출시되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품과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어요.
카페 전문점에서 실시하는 텀블러 마케팅도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텀블러 사용 시 할인이라는 환경친화적인 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시즌마다 텀블러 마케팅이 펼쳐져요. 그러다 보니 마음에 쏙 드는 제품이 보일 때마다, 여행지 기념품 숍을 갈 때마다, 시즌 이벤트로 텀블러가 나올 때마다 계속 구매하는 것이죠. 심지어 마트나 식당에서도 특정 제품을 구매하면 텀블러를 증정하는 이벤트 행사를 진행하는 추세입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텀블러 대란이 붐처럼 확산되고 한정판 굿즈만 모으는 수집가도 생겨났습니다. 어른들을 공략한 귀여운 디즈니 캐릭터와 콜라보 한 텀블러가 등장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완판 되기도 했죠. 그런데 여러분 혹시 텀블러 몇 개씩 가지고 다니시나요? 환경 전문가들은 필요 이상으로 사는 것은 반환경적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수명 주기 에너지 분석연구소 통계에 따르면, 유리 재질의 텀블러는 최소 15회, 플라스틱 재질은 최소 17회, 세라믹 재질은 최소 39회 이상을 사용해야 환경 보호 효과를 낸다고 합니다. 텀블러를 만들고 사용하고 폐기하는 모든 과정에서 자원과 에너지를 많이 소비할 뿐 아니라 배출되는 온실가스 양이 플라스틱 컵보다 13배, 종이컵보다는 24배나 많기 때문이에요. 스테인리스 텀블러를 사용한다면 최소 1000번은 써야 하죠.
이처럼 텀블러와 같은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행위가 오히려 환경에 해가 되는 현상을 '리바운드 효과(rebound effect)'라 부릅니다. 소비자의 환경 의식이 높아져 에너지 고효율 제품의 구매는 늘지만, 가전제품의 수도 함께 늘어나 전체 전기 사용량은 줄어들지 않는 현상이 대표적인 사례예요.
리바운드 효과가 나타나지 않게 하려면, 텀블러는 꼭 필요한 개수만 보유하고 일 년 이상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텀블러를 고를 때 재활용이 쉽도록 단일 소재를 선택하는 것도 환경 보호를 위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만약 텀블러를 많이 사놨는데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면 딱 필요한 만큼만 갖고 나머지는 필요한 사람과 나눠보는 건 어떨까요? 잘 쓰지 않는 텀블러는 중고거래 사이트인 당근 마켓이나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는 방법으로 자원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국민의 수준은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국 1만 360여 곳 카페에서 일회용 컵 사용량이 지난해보다 75% 감소했고, 국내 텀블러 시장은 매년 20%씩 커지고 있죠. 하지만 텀블러를 수집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사용해야 환경을 보호할 수 있어요. 일회성 행동이 아닌 꾸준한 실천이 동반돼야 한다는 점, 잊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