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풍석포제련소 Mar 22. 2021

[석포제련소]나라위해 400년 된 종가 팔아버렸다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


지난해 2월, 문재인 대통령은 KBS에서 제작된 '나의 독립 영웅' 다큐멘터리의 내레이터로 등장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직접 독립유공자들을 소개했는데요. 그 가운데서도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무장 투쟁가들을 길러내고 계몽운동을 벌이는데 헌신한 석주 이상룡 선생의 업적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상룡 선생은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라며 "고향을 떠날 때 마련한 독립운동자금이 바닥나자 400년 된 종가 임청각을 매각했다."라고 전했는데요. 이때 이상룡 선생이 매각한 임청각은 이상룡 선생의 생가로, 그의 후손들이 임청각의 제 이름을 찾는데만 무려 70년이 걸렸다고 해요.

경북 안동에 자리한 임청각은 지난 100년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새겨져있는 역사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는 임청각. 지금부터 임청각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장소인지 같이 알아볼까요?



석주 이상룡 선생의 의지가 깃든 곳

"독립운동의 든든한 기반, 임청각 "


안동시 영남산 기슭에는 비탈진 경사면을 따라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아 지어진 전통한옥 '임청각'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1519년에 지은 고성 이 씨 종택이랍니다. 임청각은 대한민국 보물 제182호로 무려 99칸의 규모를 자랑하는데요. 조선시대에 왕이 아닌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최대 규모인 99칸으로 현존하는 살림집 중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고 해요.


임청각은 주변으로 영남산과 낙동강이 자리해 자연과 어우러진 수려한 고택이었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이 중앙선 철도를 건물 위에 가로질러 놓는 바람에 40여 칸의 부속건물이 사라지고 현재 60여 칸만 남아있어요. 11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임청각이 달가울 리 없었던 일본의 횡포였죠. 현재는 임청각 복원계획이 시작되면서 복원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요.


일반적으로 종택의 사당에는 조상의 위패를 모시지만 임청각은 조상들을 모시는 위패가 없다고 하는데요. 이상룡 선생이 독립운동을 위해 떠나면서 "나라를 되찾지 못하면 가문도 의미가 없다"라는 말을 남긴 뒤 조상들의 신주를 땅에 파묻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조국 독립을 원하는 간절한 마음은 지금도 큰 울림을 주고 있죠.



장 항일투쟁에 투신한 삶

"재조명 받는 독립운동가, 이상룡 선생 "


일제강점기 당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을 벌였습니다. 총과 칼을 들고 전선에 나서는 무장 투쟁가들뿐만 아니라 이들을 육성해내기 위해 많은 유학자들도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죠.


이상룡 선생은 평생을 붓과 책을 들고 살아온 유학자였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던 그는 의병들을 지원하고 근대식 교육기관을 설립해 계몽운동을 펼치는 등 지식인으로서 독립운동에 앞장서게 됩니다. 이상룡 선생의 노력에도 1910년 한일 강제병합이 이루어지자 파격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안동 지역에서 최초로 노비문서를 태우며 노비들을 면천해주고, 모든 가산을 처분해 만주로 떠난 것인데요. 50여 명의 가솔들을 데리고 척박한 만주 땅에서 무장독립투쟁을 준비하면서 자금이 부족하자 아들을 안동으로 보내 임청각을 팔아 군자금으로 보탰다고 전해져요. 그 후로 일제에 대항해 독립군 양성기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정신을 키우는데 힘씁니다.

1924년 임시정부 이승만 대통령이 탄핵되고 2대 대통령으로 추대된 박은식이 국무령제로 개편한 뒤 1925년 초대 국무령에 이상룡 선생을 추천해 당선시킵니다. 하지만 이상룡 선생은 분열된 독립운동 단체에 회의를 느끼고 다시 만주로 돌아와 무장 항일투쟁에 헌신하게 됩니다. 하지만 끝내 광복을 지켜보지 못하고 74세에 나이에 순국하죠.



독립운동가들의 숨은 헌신

"세상이 기억해야 할 역사"


광복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되찾은 것이다


독립투쟁운동의 밑거름으로 쓰였던 임청각은 현재 문중에서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마련하여 다시 그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이상룡 선생의 후손들은 가난에 시달리며 뿔뿔이 흩어져 살았지만 한마음으로 조국의 독립을 염원했고 또 기뻐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이 자신들의 삶을 바쳐 독립에 힘쓰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의 삶의 터전은 꿈꿀 수 없었을지 몰라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힘겹게 지켜낸 것임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을 잘 보존해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의 손으로 훼손하고 잃어버리는 일 역시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소중한 문화재와 자연을 기억하고 보살피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작가의 이전글 [석포제련소]탄소 배출량 끔직하다는 이 식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