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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 활동가들의 행동은
역사가 판단할 겁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인터뷰

2011년 크레인에 올라 3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홀로 고공농성을 이어갔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국내 노동운동에서 매우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노동자의 힘이 모이면,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강조하는 그녀의 생각은, 시민의 힘을 믿고 오랫동안 환경운동을 해온 그린피스와 많이 닮아있습니다. 그린피스는 지난 5월 17일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났습니다. 김 지도위원이 생각하는 긍정적 변화는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함께 들어볼까요?


2011년 1월 6일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은 지상 35미터 위 크레인에 올랐습니다. 그곳에서 사측의 구조조정에 항의하는 싸움을 309일이나 홀로 지속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노동 운동을 통해 ‘투쟁’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힘들고, 때로는 외로운 싸움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습니다. ‘복종의 삶’이 몸은 편했지만,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저항하는 방식에만 관심을 갖고, 왜 그토록 힘들게 싸워야 했는지 궁금해하지 않아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1. 불복종의 삶:
부당한 현실에 굴종하지 않기 위한 최선의 선택


그린피스: 우리 사회에서 시민 불복종, 직접 행동, 시민운동 등의 개념이 아직도 낯섭니다.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요?


김진숙: 제 평생은 불복종의 삶이었어요. 버스 안내양을 할 때, 몸 검신(몸수색)을 당했었습니다. 남들이 다 하니까 하게 됐었죠. 검신에 응하지 않으면 ‘삥땅’을 친 것으로 간주됐고, 수치심을 느꼈지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노동 운동 때문에) 감옥에 갔을 때, 검신 요구가 있을 때는 엄청나게 저항했었습니다. 이로 인해, 추가로 검찰 조사와 기소도 당했었습니다. 저항을 해서 죄 값을 받는 것이 오히려 제 마음이 더 평화로웠습니다. 어떤 상황이던지 (옳지 않은 요구에) 굴종하면 평생 짐으로 남습니다. 그것도 폭력에 의해 굴종을 하고 나면 몸은 편할진 모르겠지만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요. 제 저항이 사회에 용납되지 않는 행동이라 해도 제 양심에는 떳떳하니까. 
누군가가 저항을 시작하면 사람들은 (부당함에 대해) 인지할 수 있게 됩니다. 멋모르고 당하고 용기 없어 당하던 이런 것들을 안 당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린피스: 노동 운동을 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동계 운동이 폭력적이라거나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평화적으로, 순리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보이는 방법을 택하는 이유가 있나요?


김진숙: 대답하기 가장 막막한 질문입니다. 왜 대화를 하지 않고 과격한 방법으로 하는가? 
한진중공업의 경우도 2003년도부터 이어져 온 문제였습니다. 2년을 싸워서 사장과 합의를 했는데 그것을 회장이 거부했었습니다. 2년을 상경 투쟁, 삭발, 천막 농성해서 합의에 이르렀던 것을 회장이 거부하면 어떻게 하나요? 조합원들도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두 해봤지만 결국 되지 않았습니다. 교섭 자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임금 교섭을 가지고 파업을 하면 문제가 달라지지만 구조조정에 관해 파업을 하는 것은 불법이었습니다. 법적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노동자들이 공평하게 무언가 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309일 크레인 위에서, 전광판에서 342일, 이런 것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법과 제도가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화로 하라는 이야기는 동네 깡패가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데 말로 하라고 하는 격입니다. 
노동자들이 불복종, 저항을 하게 됐을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때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 잘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어떤 행동에 대해서 나에게 어떤 불이익이 돌아오겠다는 것들을 염두에 둘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린피스: 언론을 통해 크레인 위에 올라간 행동만을 접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단편적으로 보는 분들의 시각으로 인해 힘들진 않았나요?


김진숙: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앞뒤 전후 좌우를 보지 않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노사관계를 마비시키고 기업의 구조조정이 필요한데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고 있다’고 몰아가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공권력과 언론이 공정하기만 해도 이 나라에서 자살을 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공정하다는 것 자체가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됩니다. 
저 같은 경우도 크레인에 올라가 있을 때 어버이연합 같은 곳에서 와서 뛰어내려 죽으라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한심한 소리지만 귀에 쟁쟁 맴돌아요. 평상시 같으면 듣고 흘려버릴 수 있지만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있으면 ‘이렇게 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하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시민 불복종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아래의 글을 참고하세요.


#2. 대중과의 소통:
소통은 평정심과 위안을 가져다주는 통로. 시민들과의 공감은 변화의 출발점 


김 지도 위원이 대중에게 잘 알려지게 된 계기는 고공 시위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오랫동안 홀로 고공 농성을 진행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크레인 위에서 그녀는 수많은 시민들과 트위터를 통해 소통하기 시작했고 지지와 응원의 목소리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를 지지하는 많은 시민들과 각계 인사들이, 노동 운동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에게 대중과의 소통은,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게 도와주는 원동력이 됐고, 변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선물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린피스: 크레인 위에서 트위터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이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진숙: 사실 크레인에 올라가서 처음 트위터를 배웠습니다. 그전에 스마트폰을 안 썼어요. 트위터를 하라고 권유받았을 때, 왜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는 할게 없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트위터를 개설해서 글을 올리니까 사람들이 뭐라고 뭐라고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어요.…. 하룻밤 사이에 팔로워가 천 명이 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의 주목과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사람들이 말을 시키길래 문자로 알고 편하게 이야기를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공개된 대화였었어요. 그걸 알았으면 제대로 대화를 못했을 것 같아요. 
(너무 추운 날씨 때문에) 양말이 얼었고, 그게 머리에 떨어졌고 너무 아팠다, 시루떡을 올려준 것이 벽돌처럼 됐다… 이런 이야기가 사람들은 재미있었나 봐요. 
트위터를 통해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정말 불안했어요. 무언가 집중할 수 있는 것이 필요했어요. 나에게 필요한 맞춤 언론이었죠.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이 그렇게 큰 위안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린피스: 대중의 힘을 믿으시나요? 사람들이 함께 단결해서 부당함에 대해 싸우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오랜 기간 투쟁하는 계기가 된 것 같은데, 맞나요?


김진숙: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움직이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공감되는 지점들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얼마 되지 않아 일본에 갔었습니다. 오사카 등 몇 개 지역을 보면서 일본 시민들이 시위하는 것을 보니 젊은 이들은 우리와 똑같이 스마트폰 보고 이어폰 꽂고 시위에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촛불 시위해도 변하는 게 없지 않으냐….. 아직까지는 환경문제를 유보해도 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요구하는 것과 시민들이 공감하는 것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희망버스도 한진중공업 문제만은 아니었다고 봐요. 어느 순간 시민들과 문제가 공감되는 지점이 있어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활동가들이 힘들지만 그때까지 꾸준히 목소리를 내면 귀 기울여 듣는 사람들이 생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린피스 활동가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


#3. 지구력:
누군가 귀 기울여 주는 사람들이 생길 때까지 지치지 않은 것이 중요.


김 지도위원이 추구하는 시민 불복종이나 직접 행동은 그린피스의 캠페인 방식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린피스는 비폭력적 직접행동(Non-Violent Direct Action)을 통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효과적으로 알리고 문제에 대한 공론화와 나아가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려고 합니다. 그 궁극적 목적은 우리 사회를 위한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작년 10월 5명의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신고리 5,6호기 추가 건설을 막기 위해, 고리 원자력 발전소 부지 울타리 앞에서 평화적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이로 인해 현재 이들에 대한 재판이 울산지방법원에서 진행 중입니다. 김 지도위원은 대중의 힘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강조하며, 지치지 않고 신념을 지켜나가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린피스: 작년 10월 고리 원전 앞에서 평화적 시위를 진행한 5명의 그린피스 활동가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김진숙: 희망버스를 탔던 분들이 아직까지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부채감을 느낍니다. 밀양도 그렇고 강정도 그렇고…. (이런 일들에 관해) 이 시대에 판단을 내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겼다 졌다, 이 시대에서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예전에 구류되고 했던 것들이 나중에서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민주화운동에 참여했음을 증명하는) 증서가 왔습니다. ‘아, 이런 일이 다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류를 하도 사니까, 강력반 형사들… 서너 명이 달려들어서 목을 돌려놓고 지근지근 밟았습니다. 그게 이제 ‘민주화운동입니다’라고 오니까 ‘이게 무슨 격세지감이냐’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마음먹은 일 의지대로 가면 역사가 평가한다는 말이 맞다고 봅니다.


그린피스: 노동 운동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 운동들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김진숙: 사람들의 생각은 바뀝니다. 확확 바뀌지는 않아도… 이번 총선 결과도 그렇지만… 
용납할 수 없는 시대적인 상황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변화되어 온 것이 대중의 힘입니다. 지도자들은 변하지 않았지만, 노동자들과 대중들은 꾸준히 변해왔습니다. 
6월 항쟁, 투쟁, 촛불시위, 희망버스 등을 통해서 꾸준히 앞으로 가고 있습니다. 표로 심판되기도 하고 투쟁을 통해 심판되기도 하고…. 뒤돌아보면 우리가 해왔던 말이 맞았습니다. 
주 5일제만 해도 씨알이 먹히지 않았던 이야기였습니다. 노동자들에게도…. 그렇게 변화되어 왔습니다. 멀리 보고 천천히 가고…. 대중에 대한 믿음…. 그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주역이라고 생각합니다. 


- 인터뷰 정리: 김태종 /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선임 커뮤니케이션 담당


 * 김진숙 지도위원은 인터뷰의 끝으로 현재 재판 과정에 있는 활동가 다섯 분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영상 메시지를 여러분과 함께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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