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빛보라 Oct 22. 2021

고기에 대한 단상


[2021년 여름]


 인근에 환경을 보호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작은 독립책방(구미 책봄)이 있다. 이번 여름방학 중 처음으로 겨우 내 시간을 만들 수 있었던 어제 여러 작은 가게들이 뭉쳐 팝업스토어를 열었는데, 책봄에서 럭키박스를 준비했다고 하여 부랴부랴 달려갔다. 럭키박스는 일종의 블라인드 책 상품으로써 내가 원하는 주제의 박스를 선택하면 되었다. 7가지 정도의 주제가 있었는데 내가 정한 건 ‘비거니즘’! 난 어쩌면 고기를 포기할 수 없어 책 읽기조차 미뤄온 것일 텐데, 왠지 내가 직접 책을 선택해 읽기는 엄두가 안 나도 다른 누군가가 짠하고 골라주는 책은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만난 책은 서울시립대학교 비거니즘 동아리 베지쑥쑥에서 펴낸 『우리들의 채식 일기』였고 오늘 드디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고기 끊기를 거부했던 내가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오늘(8월 10일)은 말복이다.

 



[2020년 가을]


 채식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함의가 생겨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은 분위기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냉면을 먹어도 곁들여 먹는 삼겹살을 포기할 수 없고 콩나물밥을 먹어도 위에 돼지고기 다짐을 솔솔 뿌려 먹어야 성에 찬다. 부추전을 부칠 때 오징어가 빠지면 서운하고 식당 가서 샐러드를 먹어도 주로 치킨 샐러드를 선호한다. 간혹 자유부인이 될 기회가 오면 묻고 따지지도 않고 숯불구이 집으로 간다. 이런 내가 계속 비건에 대한 관심을 놓을 수 없었던 건 작년 가을 즈음 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를 읽고 나서부터였다. 대량 축산 시스템의 문제점과 동물의 권리 등을 처음 알았고 그 후에는 고기와 생선을 덜 먹으면서 양질의 단백질을 보충할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답이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뭘 먹으란 말인가? 내 밥이 아니라 아이 밥 메뉴를 정해야 하기에 답이 나오지 않았다.

 



[2020년 여름]


 작년에 이사 간 친구 집들이에 모여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당시 6살, 3살 두 아들을 키우던 친구가 말했다. “난 두 돌까지 아이들 매일 소고기 먹였어. 그것도 식어서 질겨질까 한 점 한 점 구워서 바로 먹였지.” 어쩌다가 고기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듣고 나서 뭔가 크게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말하면 뭔가 아이들 대충 키우는 엄마가 될 것 같아 그냥 듣기만 하고 다른 이야기는 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지역 맘 카페에 들어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제목 : 소고기 꼭 먹여야 하나요?’ 새벽 2시에 글을 올렸는데 2시간도 안 돼서 댓글이 10개가 넘게 달리더니 하루 동안 거의 40개의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은 비슷한 의견이었고 비싸서 다른 단백질로 조금씩 대체하기는 하지만 최고급 안심이 아니더라도 다진 홍두깨살이나 우둔살이라도 매일 먹이고 있다는 엄마들이 많았다. 충격의 연속.

 

 나도 고기를 안 주는 건 아니다. 탄단지가 고루 섞이면서도 매번 다른 조리법의 메뉴로 구성하려고 무던히도 애쓴다. 어린이집에 가는 평일을 기준으로 아침은 바빠서 빵이나 과일로 대신하기에 저녁 한 끼라도 제대로 먹이려고 애를 쓰는데, 아이들이 잘 먹는 메뉴로 주로 준비하다 보니 찜닭, 소불고기, 계란말이, 마파두부, 돼지 삼겹살 구이, 고등어구이, 갈치구이, 소시지 등을 돌아가며 해 먹고 있다. 식판 3칸 중 한 칸은 무조건 단백질을 담는다. 어쩔 땐 두 칸. 볶음밥을 만들어도 햄이나 다진 고기들을 필수로 넣고 파스타를 만들어도 베이컨 종류를 넣고 사이드 메뉴로 치킨 같은 고기 메뉴를 꼭 준비한다. 퇴근 시간 30분 전부터는 자연스럽게 의식의 흐름이 저녁 메뉴로 흘러간다. 먹고사는 일은 정말 힘들다. 하지만 이렇게 애를 쓰면서도 다른 엄마들의 소고기 열성에 맥이 빠지고 죄책감을 느끼고야 말았다.

 



[2017년 늦봄]


 결혼을 하고 임신을 했지만, 임신에 대한 사전 지식이 매우 부족한 1인이었다. 임신하면 어떤 검사를 하는지도 잘 몰랐고, 나의 걱정은 오로지 식탐이 폭발해서 몸무게가 너무 많이 늘면 어쩌지 하는 걱정뿐이었다. 그런데 24주쯤 했던 임신성 당뇨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아 재검사를 하게 되었다. 학교 앞에 파는 불량식품 맛이 나는 약을 두 통이나 마시고 피를 네 번이나 뽑아야 했다. 제발 통과하기를 바랐으나 결과는 또다시 불합격. 임신의 특권인 맛있는 음식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특히 면 요리와 과일을 좋아하는 내게 임신 당뇨 식단 관리는 너무 힘든 것이었다. 배 속에 인질(임신 당뇨 카페에서 예비 엄마들이 주로 뱃속 아가들을 가리켜 인질이라 표현합니다)이 있기에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처절한 식단 관리가 시작되었다.

 

 첫째 때는 출근 중이어서 급식소 영양 선생님 자리에서 인슐린 주사를 맞고 식사를 했다. 식전, 식후 1시간, 2시간 이렇게 하루 9번 손가락을 찔러 혈당 검사를 하고 수치를 기록했다. 되도록 혈당을 올리는 탄수화물을 적게 먹었고 관리자의 배려로 매일 조금 일찍 퇴근하여 모자란 식사를 간식으로 채웠다. (그때는 모성보호 시간을 임신 초기와 후기밖에 쓸 수가 없었고, 학교에서 챙겨 먹을 수 있는 간식이 많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둘째 때는 휴직 중이었으므로 아예 끼니를 여섯 번으로 나눠서 먹었다. 탄수화물을 포기할 수 없어서 통밀 파스타면, 통밀 국수, 통밀빵, 현미밥, 콩국수 등으로 식사를 하고 늘 식사 순서는 야채부터 먹었다. 탄수화물을 줄이면서 자연스럽게 혈당이 덜 올라가는 단백질 식사가 늘었는데 고기나 두부 종류는 필수였다. 그리고 출산을 하고 난 뒤에도 수치가 정상적으로 떨어지지 않아 심각하진 않지만 여전히 관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좋아하는 탄수화물을 많이 못 먹게 됐는데 고기까지 먹지 말라고? 하는 마음이 자꾸만 생겨난다.

 



[2017년 봄]


 첫 발령지에서의 근무가 끝나고 새로운 학교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다. 교직에 들어서면서 3가지 버킷리스트를 정했는데 1 모교에서 근무, 2 은사님과 함께 근무, 3 제자와 함께 근무인데 이 학교는 1, 2번을 모두 달성할 수 있는 학교였다. 바로 나의 모교. 마침 5학년 때 은사님이 다시 근무하고 계셨고 나는 고민 없이 지원했고 바로 이동 통지를 받았다. 수석교사셨던 은사님은 임산부 제자 무리할까 늘 챙겨주시고 걱정해주셨다. 정말 갚을 수 없는 스승의 은혜였다. 그런데 어느 날 식사 안부를 여쭈던 내게 옆에 계시던 교무부장님이 한마디 하셨다. “수석님 고기 안 드시잖아.” 3월 첫 회식 때도 분명 삼겹살을 먹으러 갔었는데, 은사님이 고기를 안 드셨던가? 같은 자리에서 먹지 않아서 그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은사님께서 고기를 안 먹고 학교 급식을 먹기가 진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결코 채식을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1988년]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날아왔다. 그 이유는 바로 그때 내가 살았던 집주인 아저씨가 돼지를 잡는 도축업을 하시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도축장은 바로 집안 마당. 지붕엔 슬레이트 판자가 덮여 조금 널찍한 마당임에도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축장의 환경이 원래 그러한 것을. 여섯 살의 나는 마당을 바라보고 우리 집 방에 걸터앉아 아저씨가 돼지를 잡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돼지 멱따는 소리라고 하던가. 죽음을 앞둔 처절한 돼지들의 울음소리를 엄청나게 들었다. 먼저 쇠도끼로 돼지 얼굴 옆 목 부분을 내리치면 돼지가 쓰러지는데 거기서 피를 쭉 짜내 대야에 받는다. 돼지의 숨이 거의 끊어져 갈 때쯤 때밀이 크기의 납작한 철판으로 털을 민다. 그다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의 나는 반복되는 잔인함으로부터 생명 박탈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 것 같다. 그래도 고기를 잘 먹으면서 컸으니까. 없어서 못 먹었으면 못 먹었지, 있으면 동생들에게 뺏길세라 부리나케 집어 먹던 시절이었다.

 

 

 이런 내가 고기를 내려놓을 수 있을지 나도 정말 궁금하다. 아직 제대로 시작은 못 했지만 마음속에 뭔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고, 오늘 채식 일기 책을 펼치며 비건에 한 발 내디뎠다는 건 내 인생의 엄청난 사건이 될 것 같다. 비록 저녁 메뉴로 그저께 남은 크림 파스타 소스에 면을 더하고, 치킨을 한 마리만 더 시키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말이다. 앞으로 꾸준히 환경에 관련된 글을 적어 볼 생각이다. 더불어 나보다 앞서가는 지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아직 망설이고 있는 이들에게는 손 내밀어 도와주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