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빛보라 Jun 19. 2023

모든 어린이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최선의 기준이 다를 뿐

 아이들의 속도는 제각각이다. 주어진 시간 동안 충분히 해내겠지 싶은 것들도 늘 할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색을 입히고 꾸미는 아이들은 매번 제시간에 완성을 하지 못한다. 아이가 야무져서 담임의 안내가 없어도 시간이 지난 뒤 다 했다고 내는 경우는 정말 고맙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에게는 수업 중간에 재촉하지 않는 편이다. 분명 그 마음의 시작은 조금 더 잘해보고자 하는 것이었을 테니. 이러한 의지는 정말 소중한 것이며 잘하려는 마음은 분명 좋은 것이니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이상 시간 안에 완성해서 내는 것도 꼭 필요한 기능이라는 생각에, 완벽하려는 마음을 조금만 덜어내면 좋겠다 싶다.


 그런데 언제까지 내라고 요구하지 않으면 미완성인 작품을 책상 서랍 속 어딘가에 넣어놓았다가, 또는 집에 가서 해오겠다며 안내장 파일에 넣어 두었다가 자연스럽게 잊히는 아이들의 작품은 매번 아쉽다. 이런 아이들은 대개가 작품 구상에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 출발이 더디거나,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하느라 해야 할 것을 시작하겠다는 마음조차 없는 경우일 것이다. 학급일지에 잘 표시해 두었다가 언제까지 해오라고 안내를 해도 대답만 알겠다 할 뿐 완성작을 받게 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왜 안 내냐고 물으면 잠시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친구들과 함께 깔깔대는 아이들이다. 이것도 일종의 책임일 텐데, 해야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에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은 어린이의 특권이자 큰 복임에 틀림없다.

  

 이 두 종류의 아이들이 반반씩 섞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현실에서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이들은 분명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뭔가 듬성듬성 어설픈 작품을 5분, 10분 만에 들고 오는 경우이다. 이때 각별히 주의할 점은 아이 앞에서 한숨을 내쉬지 않는 것. 그럴 땐 이너피스를 마음속으로 되뇌며 색칠이 덜 된 곳을 짚어주면서 흰 부분을 조금만 메꾸어 더 색칠해 보자고 이야기해 준다. 다행히 아이들은 기분 나빠하지 않고 알겠다 하고는 자리로 돌아간다. 그런데 다시 돌아오는 작품은 전과 눈에 띄게 변화된 건 없다. 다시 해보라는 선생님의 부탁이 짜증 날 법도 한데 그래도 이런 아이들은 대개 다시 하라고 할 때까지 하는 편이다. 나라면 분명 여러 번 잔소리 듣는 것이 싫어서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고 하겠지만, 나는 안다. 이것이 대충이 아니라 그 아이의 가장 최선의 것이었음을. 여러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뭐든지 적당한 아이들이 가르치기가 수월한데, 어쩌면 다양성을 인정하자고 주장하면서 내가 시간이라는 틀에 아이들을 가두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아이의 최선을 대충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인생 8년 차인 1학년들에겐 ‘적당함’이란 것이 가장 높은 수준의 기능일 것이다. 결혼 8년 차 주부가 되었어도 아직 ‘대충’, ‘적당히’ 재료를 넣어 요리하는 기능을 습득하지 못한 내가 아닌가. 8년이란 시간은 아직 짧디 짧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 아이의 아빠를 아동학대로 신고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