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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보라 May 02. 2023

반 아이의 아빠를 아동학대로 신고했다

그런데 아이는 아빠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은성이가 반에서는 어땠나요?"


"잘 따라올 때도 있지만 수업 시간이 조금 지나면 '아', '음' 같은 소리를 계속 내고요, 일어나서 돌아다닐 때도 있어요. 체육 시간에는 운동장을 배회하거나 벤치에 누워있는 경우도 있었고, 종이 쳐도 교실로 들어오지 않고 놀이터에서 놀거나 학교 안을 배회하여 찾으러 나간 적도 꽤 많아요. 반 친구들에게도 주먹을 쥐고 때리는 시늉을 한다거나, 본인에게 잘못을 지적하는 친구를 향하여 소리를 지르거나 째려보고 밀치는 등의 행동을 했어요. 시간이 지나 감정이 가라앉거나 다른 아이들이 다 하교하고 교실에 혼자 남아 오빠를 기다리며 저랑 이야기할 때는 잘못해서 죄송하다 이야기도 하고 제가 환경 꾸미기 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고 제 말을 잘 듣는 편입니다."


"준비물 챙겨 오는 거나 옷 입고 오는 건 어땠나요?"


"준비물은 챙겨 오는 경우가 거의 없고요, 복장은 아직 유치원 때 입던 배가 보이는 작은 체육복을 입고 오거나 아주 갑자기 추워진 날에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등교를 하기도 했었어요. 옷이 깨끗하지 않은 경우도 많고 다른 선생님은 지나가면 냄새가 난다고도 했어요."




사실을 파헤치기가 겁이 났다. 믿고 싶지 않았다. 입학 후 두 달이 가까운 시간 동안 지켜본 아이의 상태로 보았을 땐 정황은 있었지만 그냥 정황 거기까지였으면 했다. 3월 어느 날 봄이 다가오는 것 같다가 돌연 한겨울 추위가 왔다 간 날이 있었다. 등원하는 우리 아이들은 바지까지 두둑이 내복 차림으로 입혀 보냈고, 나도 겨울에 입는 조금 도톰한 코트를 다시 꺼내 입었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내려주고 학교로 들어가는 길, 저기 멀리서 오르막 길을 걸어 올라가는 여자 아이가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믿고 싶지 않은 광경이 나타났다. 아이가 한여름에나 입을 법한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기온이 7도였다. 내복에 코트까지 입었지만 아이의 모습만 봐도 으슬으슬 추위가 몰려왔다. 대신 걸쳐 줄 옷도 마땅치 않아 괜히 미안한 마음에 뜨문뜨문 춥지 않으냐고 물었지만, 아이는 안 춥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정말 마음속에 온갖 분노가 차올랐다. 입학 이후로 매일 가래 기침을 컥컥 해대고 콧물이 묻어 매번 마스크를 바꿔 달라고 나에게 오는 아이인데, 어찌 이런 복장을 입혀 보낸 거지? 정말 아이의 부모에 대한 원망이 차올랐다. 이혼 가정인 걸 알고 있었으니 다시 말하면 아빠만을 향한 분노였다. 그런데 이런 날씨 개념 없는 복장으로 인해 나는 아동학대의 증거를 보고야 만 것이다.



4월이면 분명 봄인데, 교과서 이름도 '봄'이고 온갖 예쁘디예쁜 꽃들은 모두 피어나는 시기에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종종 골칫거리이긴 했다. 이틀 사이로 현장체험학습과 체육대회를 이어했는데, 현장체험학습 날엔 해도 들지 않는 썰렁한 오전 시간에 칙칙한 단체 사진이 너무나 야속하더니, 다음 날 체육대회 날에는 무려 30도의 한여름 날씨로 돌변했다. 일기예보를 순간순간 확인하지 않으면 자녀의 옷을 입히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인정한다. 그런데 그다음 주에 또다시 일교차가 큰 아침 날씨가 찾아온 것이다. 사실 설마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땐 정말 빨아놓은 옷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마지못해서 입혔었겠지라고. 그런데 출근을 하고 나는 또다시 반팔 차림의 아이와 마주쳤다. 물론 학교에 반팔 복장인 아이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 바이러스에 취약한 1학년엔 그다지 많지 않다.


"은성아, 반팔 입고 왔어? 안 추워?"


아이는 반가움인지 민망함인지 모를 동작으로 두 팔을 위로 기지개 켜듯이 쭉 뻗었는데, 오른쪽 팔 어깨와 가까운 쪽의 팔의 안쪽 부분에 정말 진하고 새파란 멍이 들어 있었다. 어디 부딪쳐서 생기는 멍과는 색깔이 확연히 달랐다. 순간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게 어쩌다가 멍이 들었냐고 물으니 작은 오빠가 화가 나서 책상으로 밀어 맞았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빠가 5교시 수업을 마치고 내려올 때까지 있다가 직접 물어보았다. 은성이의 오빠는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이유는 모르는 것 같았다. 오빠가 아니라고 잡아떼니 갑자기 은성이가 말을 바꾼다. 큰 오빠가 그랬다는 것이다. 큰 오빠는 이웃 중학교에 다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사실은 알 길이 없고, 아이는 오빠와 함께 교실을 나갔다.




교무실로 갔다. 교무부장님과 교감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약간 의심스럽긴 하다고 말씀드렸다. 보건실로 갔다. 보건 선생님께 상황을 말씀드리자 다음 날 등교하면 바로 보건실로 보내달라고 하셨다. 그림 그리기로 검사를 해보시겠다는 것이다. 나쁜 경우를 많이 보았다며 걱정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단순한 학대의 경우를 말씀하시는 줄 알았는데, 수요일까지 이어진 검사에서 보건 선생님은 남성 가족의 성적 학대를 제일 먼저 걱정하시고 그 부분을 빨리 확인하느라 검사를 서둘렀다고 하셨지만, 다행히 신체 접촉은 없는 것 같다고 결론 내리셨다. 그렇다면 이 멍은 왜 생긴 것일까. 보건실에 있는 인체 해부도를 가리키며 아이는 "이건 뭐예요?" "저건 뭐예요?" 하고 계속 질문을 했다고 한다. 보건 선생님은 질문에 하나하나 전부 대답해 주었다. 그랬더니 조금 있다가 아이가 "나는 심장이 아파요."라고 했다. 궁금해진 보건 선생님이 "심장은 마음속이 아프다는 거야 아니면 살이 아프다는 거야?"라고 물으니, 처음엔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가 돌연 말을 바꾸어 살이 아프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내가 볼 수 있느냐고 양해를 구해 가슴 윗부분을 본 선생님은 파스 같은 접착되는 무언가가 붙어있었던 흔적을 발견했다. 아이는 아빠가 여기를 때렸고, 그 위에 뭔가를 붙였다는 것이다. 무엇으로 맞았냐고 물었더니 회초리라고 했다. 도구를 정확히 알아내고 싶었기에 보건 선생님은 다시 물으셨다. "회초리가 뭐야?" 그랬더니 아이는 대뜸 "선생님은 회초리도 몰라요?" 했다. "잘 모르니까 여기다가 그려 줘."라고 했더니 아이는 쓱싹쓱싹 그리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했을 때, 보건 선생님께서는 작은 오빠를 불러 더 확인할 것도 없이 너무나 명확한 아동학대라고 하셨고 상담 선생님, 생활부장 선생님에게도 내용을 전하고 지체 없이 경찰서에 신고를 하게 된 것이다. 우선 경찰과 담임인 나, 보건 선생님이 가족 그림 검사 결과와 평소 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동안 아이는 wee클래스 상담실에서 상담선생님과 기다리다가 우리 면담이 끝나면 경찰이 다시 아이를 만나기로 했다. 담임으로서 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해 경찰들과 대면하여 대답을 하는데, 당시엔 몰랐지만 끝나고 나니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쿵쾅 거렸다. 영문을 모르는 오빠가 5교시를 마치고 우리 교실로 은성이를 찾으러 왔는데, 사정을 간단히 이야기하고 같이 끝날 때까지 교실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한참이 지나자 아이를 데리러 오라는 연락이 왔고, 오빠를 데리고 상담실로 내려가 경찰들, 상담 선생님께 인계하고 교실로 다시 올라왔다.


교실에서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1교시 쉬는 시간에 보건 선생님께 소식을 전해 들은 이후로 남은 수업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몸이 너무 힘들어 1시간 일찍 퇴근을 했다. 근처 강둑길로 가서 차를 세워놓고 내리쬐는 햇볕을 맞으며 걷고 또 걸었다. 어딘지 모를 곳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계속 걸었다. 수업 시간에 아이는 훼방꾼에 가깝기에 좋지 않은 감정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의 평소 돌봄을 받는 정도를 보면 또 너무 안 됐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아동학대 사실까지 알게 된 것이다. 눈이 부셔 찌푸린 눈 사이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불쌍한 이 아이가 또다시 보복 폭행을 당하면 어쩌지? 무기력감과 걱정스러움으로 어찌해야 할지 답답했다.


다음 날 동학년 선생님들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이가 때린 부모와 격리되어 시설로 가더라도 아직 많이 어리기 때문에 결국 그 부모와 좋았던 기억으로 다시 부모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동학대로 신고를 해도 격리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현실을 알고 나니 더 답답하고 화가 났다. 아이는 다음 날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게 지냈다. 그런데 하루가 더 지난 지난주 금요일, 아이는 유독 소리를 많이 질렀다. 목청은 얼마나 큰지 어른인 나도 아이처럼 놀라게 되는 소리였다. 특히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제지하고 하지 말라고 했을 때 아이는 더 흥분하고 더 크게 소리 지르는 행동이 반복되었다. 수업 진행이 전혀 되지 않아 급히 상담실에 호출을 하여 아이를 보냈다. 가지 않겠다고 뒤로 몸을 빼던 아이는 상담선생님이 수요일에 경찰이 왔을 때 했던 어떤 카드 검사를 말씀하시며 가서 또 그거 하지 않겠냐고 아이를 차분히 달래자 결국 제 스스로 상담 선생님의 손을 잡고 교실을 나섰다. 이젠 교실에 있는 다른 아이들도 걱정이다.




조금은 슬펐던 4월이 지나갔고, 행복할 것 같은 가정의 달 5월이 왔다. 평소 어버이날엔 효도쿠폰을 만들거나 카네이션이 그려진 카드에 편지를 적게 하여 가정으로 전달했는데, 이번엔 아이들의 작품으로 책을 만들기로 했다.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상장을 꾸미고, 평소에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말을 편지처럼 남기기로 틀을 정했다. 그러고 보니 은성이에게 아빠는 상을 주고 싶은 사람일까 싶었다. 혹시나 날 선 작품을 만들거나 만들기를 거부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반 아이들 작품은 다 있는데 혼자만 빠지게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올해 목표인 교실 책 만들기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에게 상장 종이와 내용을 적을 수 있는 학습지를 나눠주고 아빠에게 주고 싶은 상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이는 장난감을 사준 것이 고맙다며 사랑상을 주고 싶다고 했다.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는 대답했다. "아빠, 사랑해. 고마워."라고. 가슴속 저 깊이 금이 가는 것 같았다. 회초리로 날 아프게 했던 사람을 향해, 아빠라는 사람을 향해 던지는 가장 슬픈 말이었다. 결국 그날 완성을 하지 못해 주말이 지난 오늘 오빠를 기다리며 교실에 남아 다시 만들었는데, '사랑'이라는 상 이름 앞에 '매일'이 더 붙게 되었다. 마음속으로 정말 매일매일 이 아이가 사랑을 많이 받기를 기도했다. 아이가 만든 종이를 가지고 검사를 받으러 내 자리로 왔다가 갑자기 '지직' 하고 정전기가 통했다. "선생님, 선생님이랑 저랑 전기 통했어요." 그래서 나는 귀에 대고 속삭이는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원래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는 전기가 통해."




은성아, 그동안 몸도 마음도 얼마나 아팠니? 네가 조금 미워질 때도 있음을 솔직히 고백할게. 나는 너의 선생님이기도 하지만 우리 반 23명 모두의 선생님이니까. 선생님은 다른 친구들이 힘들어지는 것도 용납할 수 없고, 네가 학급 규칙을 어기는 행동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할 것 같아. 하지 말라는 말, 그만하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될 거야. 그래도 선생님이 우리 은성이를 사랑한다는 말은 진심이란다. 그리고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를 많이 물어보고 듣도록 최대한 노력할게. 이번 일을 통해서 '말을 해도 소용이 없구나. 말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구나.' 하며 앞으로 입을 닫아 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너의 학교엄마잖아. 힘든 일 있으면 엄마한테 다 말해, 알았지? 우리가 만난 이유가 있을 거야,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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