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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보라 Nov 12. 2023

여덟 살에게 배우는 사회적 기술(1)

선물은 무조건 옳다!

태어나 처음으로 학교라는 교육 기관에 들어오게 된 아이들을 위해 3월 4주 정도는 입학 초기 적응 활동을 한다. 불혹의 나이가 되었는데도 교과 이름이 익숙한 것은 우리 때도 같은 이름의 과목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우리들은 1학년> 교과 중반을 지나면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배우고 친구 집에 갔을 때 지켜야 할 예절을 배운다.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려면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을 도와주고 인사를 잘하며 칭찬, 사과 등 진심 어린 말들을 해야 한다. 친구를 초대하려면 친구의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약속을 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도 사실은 꼬꼬마 시절에 학교 교실에서 모두 배웠던 것이었다. 배운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삶에서 경험으로 배워왔다.



당연한 사실을 가르치기란 고난도의 수업 능력이다.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눈빛에게는 너희들은 잘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수업을 구성해야 한다. 당연한 걸 알지만 실천이 잘 안 되어 고민인 눈빛에게는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닌 몸으로 실행에 옮기는 행동력을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여덟 살이라는 나이는 당연한 사실도 모를 수 있는 나이다.



친구를 초대했을 때 또는 친구의 초대에 응할 때 지켜야 할 예절 중 아는 것을 말해보자고 했다. 이미 설명한 내용을 잘 기억하여 또박또박 대답하는 아이들이 기특하다. 그런데 뒤쪽에 앉은 예은이가 손을 번쩍 들고 발표를 했다.

“선물을 준비해야 해요!”

미처 생각지 못한 귀여운 대답에 나는 함박웃음을 짓고 말았다. 내 표정을 본 눈치 빠른 아이들이 같이 깔깔 웃어대고 교실은 금세 한바탕 웃음이 넘친다. 소란함을 잠재우며 말했다.

“선물은 준비하면 좋지만 그렇다고 갈 때마다 꼭 준비해서 가져갈 필요는 없어요.”


 

수업을 마치고 그날의 수업을 곰곰 되짚는데 이 장면이 자꾸만 마음에 남았다. 최근에 이사를 한 친구가 있어 몇몇 친구들이 집들이로 방문한 적이 있는데 집주인인 친구가 절대로 선물은 준비하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하기에, 그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진심이겠지 하며 정말 선물을 들고 가지 않았다. 그런데 같이 그 집을 방문한 다섯의 친구의 마음의 무게는 같지 않았나 보다. 진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두 명의 친구가 마트에서 파는 가장 크고 무거운 두루마리 휴지를 사 온 것이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세 명은 그때부터 표정 관리에 실패하고 이러면 우리가 뭐가 되냐며 투덜거렸지만 이미 친구네 집에 들어왔기에 소용이 없었다. 서너 시간 동안 맛난 음식도 먹고 신나게 수다도 나누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인터넷 선물하기 기능을 이용해 친구에게 줄 선물을 골라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었다. 친구는 정말 괜찮다고 말해주었지만 내 마음이 괜찮지 않았기에 나는 이런 선택을 했다. 그리고 예은이의 발표를 떠올렸다. 굳이 생일 초대가 아니더라도 너는 진심으로 친구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을 수도 있는데, 선생님은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했구나. 불혹의 경험치에도 친구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선물을 준비하지 않아 좌불안석 곤욕을 치르고 나니, 여덟 살의 경험치로도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너의 말이 정답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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