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밥상에서 바다 쓰레기를 만나다
몇 달 전 평범한 저녁 식사 시간, 데친 오징어 식도에서 플라스틱 조각을 발견했다. 너무나 이질적인 색깔이라 바로 눈에 띄었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설마, 진짜 설마, 플라스틱이겠어? 식도를 찢고 꺼내 보니 플라스틱이 맞다. 초록색인 걸로 보아 마모된 폐그물이나 밧줄에서 떨어져나온 파편인 듯했다. 쌀알만 한 크기의 플라스틱 섬유. 서울의 밥상 위에 바다 쓰레기가 놓였다. 환경 활동가로서 플라스틱 문제에 관해 많이도 떠들고 다녔다. 내가 버린 플라스틱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고. 하지만 막상 그 상황과 마주치니 몹시 당황스러웠다.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해안 쓰레기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20년 동안 조사된 해안 쓰레기 개수의 83%가 플라스틱이다. 그중 어업용 밧줄과 스티로폼 부표 등 어업 폐기물이 1, 2위를 다투고, 이 밖에 음료수 병뚜껑, 라면 봉지, 일회용품 등 포장재 관련 쓰레기가 뒤를 잇는다*. 이미 많은 사람이 알겠지만, 바닷모래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보면 손으로 잘 잡히지도 않는 스티로폼 파편이며 플라스틱 조각들이 무수히 섞여 있다. 바닷가에서 쓰레기 줍기 활동을 할 때, 조개껍데기보다 많은 스티로폼을 주우면서 무기력함에 짓눌렸다.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지난 5월 스리랑카 인근 바다에서는 입항을 기다리던 컨테이너선에 불이 나는 사고가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지 2주 만에 배는 침몰했고, 기름과 화학물질을 비롯해 플라스틱 너들** 수십억 개가 바다로 쏟아져나왔다. 콜롬보 해안에 서식하던 물고기와 새, 바다거북, 돌고래들이 사체가 되어 밀려왔고, 언론에서는 ‘최악의 환경 사고’라며 연일 보도했다. 하지만 이런 사고는 기실 처음이 아니다. 2012년 7월, 태풍에 의해 플라스틱 150t이 홍콩 해안에 쏟아졌고, 2017년 10월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선박 사고로 약 23억 개의 플라스틱이 유출됐는데, 모두 물고기알처럼 작은 알갱이였다. 이렇게 해양 환경에 노출된 플라스틱은 풍화를 통해 끊임없이 미세 플라스틱으로 쪼개지다 돌고 돌아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내 밥상 위에 올라온 플라스틱을 들여다보며 새삼스레 바다와 내가, 자연 생태계와 인간이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도시와 연결된 바다
그러고 보면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바다의 입’이 있다. 누구나 도심의 빗물받이에 가득 찬 담배꽁초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담배 필터가 ‘셀룰로스 아세테이트(Cellulose acetate)’라는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담배꽁초와 같은 산란성 쓰레기는 수거도 어려워 방치되다, 비가 오거나 태풍이 불면 하수구나 우수관을 통해 하천과 바다로 유입된다. 담배꽁초가 버려지는 빗물받이는 곧 바다의 입이다. 담배꽁초를 비롯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제대로 버려지지 않으면, 결국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 수많은 해양 생물들에 해를 끼칠 뿐 아니라 우리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잠재적 위해 요소가 되어 돌아온다.
도심과 바다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하수구에도 빗물받이에도 수돗가에도 세면대에도 화장실에도 한강 공원에도 바다의 입이 있다. 이문재 시인은 <바다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면대와 화장실에서 바다를 떠올릴 수 있다면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생각해보라. 화장실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변기는 바다의 입이다. 집집마다,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 ‘바다의 입’이 있다. 그렇지 않은가, 보이지 않는가?”
우리 지구에 가장 큰 위협은 나 대신 누군가 지구를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다.
담배꽁초를 줍는 행위, 도시의 쓰레기를 줍는 행동은 사소해 보이지만 바다를 지키는 강력한 실천이기도 하다. 길을 걷다가 쓰레기가 보이면 ‘내가 버린 것은 아니지만, 나의 지구이니까 내가 줍는다!’라는 생각으로 지체 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이 바로 ‘내가 행동하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쓰레기를 주우면서 나와 연결된 또 다른 존재를 생각하고, 쓰레기를 줍는 행위를 통해 나를 둘러싼 세계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은 결코 보잘것없는 일이 아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는 것으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선 사람들도 있다. 좋아하는 서핑 스팟에 난개발이 지속되자 자신이 사랑하는 장소를 지키기 위해 행동한 서프라이더(Surfrider) 창립 멤버들은 1984년부터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해양 환경을 위해 활동한다. 비닐봉지로 오염되는 바다를 보며, 자신의 삶터를 지키기 위해 발리의 청소년들이 만든 단체 BBPB(Byebyeplasticbags.org)는 발리에서 비닐봉지를 퇴출하는 데 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환경 교육에 앞장서고 더 많은 영향력 있는 개인을 만들어내는 데 힘쓰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고, 그렇게 연결되고 조직화된 개개인의 힘을 믿었던 것이다. 바닷모래에 얼굴을 콕 틀어박고 스티로폼 부스러기를 주우며 나를 압도했던 그 무기력함에 맞설 힘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동하는 매 순간 길러진다.
“쓰레기 줍기 가이드가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만들었다!
산과 바다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늦은 밤 동네를 산책하다 쓰레기를 주우며 떠올렸던 고민을 바탕으로 <언제 어디서나 쓰레기 줍기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나의 일상과 가까운 곳에서 쓰레기를 줍기도, 자연에 들어 여행 일정 중 한 두시간 정도를 할애해 쓰레기를 줍기도 한다. 혼자이기도, 누군가와 함께이기도 하다. 어떨 때 어떤 준비물이 필요한지, 쓰레기를 버릴 때는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등 ‘쓰레기 줍기’를 시작하는 실천가를 위해 간단한 안내 사항과 그날 주운 쓰레기를 메모할 수 있는 기록지를 담았다. 쓰레기를 줍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어떤 쓰레기가 가장 많았는지, 어떤 쓰레기가 가장 크고, 어떤 쓰레기가 가장 작은지, 어떤 기업에서 만든 쓰레기가 눈에 띄는지, 기록하고 공유하며 함께 ‘쓰레기 리터러시(literacy)’를 길러보자. 내가 버린 쓰레기가 결국은 사라지지 않고 돌고 돌아 나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 재활용 마크가 있어도 재활용 선별장에서는 애물단지일 수 있다는 것, 쓰레기 처리하는 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은 어떠한지, 쓰레기로 가득한 GPGP는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먹고 죽은 혹등고래와 알바트로스는 얼마나 많은지... 그동안은 보이지 않던 온갖 문제가 새롭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 해결할 힘을 기를 수 있기를, 그런 실천가가 더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해양환경공단, <2020 국가 해안쓰레기 일제·모니터링 조사 용역> 보고서, 2020.12.
**각종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원재료, 5mm 이하의 쌀알만큼 작은 플라스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