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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얗고 까만 토끼 Sep 19. 2023

아빠의 훈화 말씀.


“딸아, 평범하게 살자. 너무 대단한 사람 되려고 애쓰지 마.”


기차를 타고 본가에 내려 가면, 아빠는 항상 역 앞에 있었다. 택시나 지하철을 타고 가도 되지만, 아빤 항상 데리러 왔다. 그리곤  매번 새벽에 일어나 아침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 딸을 데려다준다. 신호등 2개가 남았을 때쯤 아빠는 주섬주섬 “차비!” 하며 5만 원짜리 두 장을 건넨다. 이제는 적지 않은 돈을 벌지만 언제나처럼 차비를 챙겨주며 훈화 말씀을 시작한다.  


 아빠의 훈화 말씀에 항상 들어가는 레파토리가 있다. ‘너는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어. 너를 한정 짓지 말고 더 큰 꿈을 꿔.’  ‘ 응~ 알겠어~’ 하고 버릇처럼 대답하던 나지만 언젠가는 너무 똑같이 반복되는 훈화 말씀에 ‘ 언제까지 더 큰 꿈을 꿔야 해? 아빠 나 30살 넘었는데 그만 꾸면 안 돼?’하며 장난스레 대답 했었다. 그런 아빠가 갑자기 평범하게 살라고 한다. 게다가 평소와 달리 아빠 말 잘 생각해 보라며 3번이나 당부 했다.


몇 주 전, 뜬금없이 늦은 시간에 엄마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직장을 몇 주 쉬어야 할 것 같다고 통보 했다. “진료 보다가 어떤 개가 낸 고음에 깜짝 놀라면서 귀가 먹먹해졌는데 그 증상이 계속되고 있어 . 여러 병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다행히 청력이나 생명에 전혀 문제 없는 이관개방증이라는 병이래. 귀가 코랑 연결된 관에 덮개 같은 게 있는데 그게 안 닫히는 거래. 크게 걱정 하지 않아도 돼. 근데 보통 스트레스나 피로 누적 같은 게 원인이라면서 쉬는 것 말고는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다네?  나 수의사 일 시작하고 6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쉰 적도 없고, 몸이 좀 쉬라고 하는 것 같아서 좀 쉬려고. 어쩌면 원장님이 그렇게 긴 병가는 안 된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럼 잠깐 일 그만두고라도 좀 쉬려고.” 최대한 걱정하지 않게 말하려 노력했지만 이미 잘 시간에 전화한 것 부터 실패였다. 하지만 혼자 며칠을 고민하다 주말 저녁 늦게야 결정을 내렸고, 내일 원장님께 이야기해 드리기 전에 부모님께 말씀 드리려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부모님에게 말한 것 보다 내가 느끼는 통증과 불안감은 더 심했다. 몇 달 전부터 심해진 목과 어깨 통증에 운동도 열심히 하고 마사지에 한의원도 다녔지만 통증은 등 전체로 이어졌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관개방증이 발병 했다. 수영장에서 귀에 물이 들어가 먹먹한 느낌이 하루 종일 이어지고 말을 할 때는 내 목소리가 귓속에서 크게 울려, 내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느낌이 오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을 때는 내 호흡 소리가 내 귀를 가득 채웠고, 등과 어깨 통증은 더 심해져서  퇴근 할때 즘엔 남몰래 아무 바닥에라도 눕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게다가 질병을 검색하면서 이런 증상이 수십 년째 이어지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에 불안감은 더 커졌다. 나는 쉬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행히 곧 2주간의 병가가 얻어 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쉬는 중에도 증세는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하며 쉬면 나을 거로 생각했던 나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그런 나를 보던 엄마는 여행을 가서 다 잊고 아무 생각 없이 있다 오자고 했고, 여행 가방을 급하게 싼 뒤 잘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아빠가 슬그머니 다가와 여행 경비가 담긴 봉투를 건네며 훈화 말씀을 시작했다.


“딸아, 평범하게 살아. 대단한 사람 되려고,  치열한 곳에서 살아남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 강남 한복판에서  높은 기준을 충족해 내려고 애쓰는 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닐 수 있어. 그들의 기준이 맞는다는 보장도 없고, 지금은 너의 전부인 그 세계를, 조금만 벗어나서 살펴보면 다르게 보일 수 있어. 나이 들면 다 똑같아. 시간이 흘러서 치열한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그때를 후회할 수도 있어. 네 몸이 그렇게 힘들다고 하면, 좀 쉬어도 돼. 아닌 여기로 내려와서 편하게 살아. 네 나이에만 누릴 수 있는 평범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 아빠 말 명심해! ”


매번 ‘My Girl, be ambitious!”를 외치던 아빠에게서 나온 평범하게 살라는 말에 눈이 먹먹해졌다. 나는 몇 년 동안 중증 환자들만 내원하는 동물병원에서 항상 긴장 상태로 살아왔다. 그 와중에 혹독한 원장님의 트레이닝을 받으며 계속 논문도 써냈고, 대학원 준비도 했다. 외국에서 공부하던 오빠를 대신해 부모님 헛헛하지 않게 예쁜 딸 노릇도 하고, 결혼도 하기 위해 열심히 연애도, 건강해지려는 운동도 빼먹지 않았다. 남들은 나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살걸? 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보이지 않는 경쟁자들과 경쟁해 왔다. 그리고 난 꽤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쏙 빼닮은 딸의 이런 모습을 잘 알고 있는 아빠였기에, 아빠는 딸의 열심이 작은 세상에 매몰되지 않고 더 큰 세상으로 향하기를 항상 바라고 응원해 주었다. 그런 아빠가 내게 쉬라고 한다.


2년 뒤 정년퇴직을 앞둔 교수님의 심경 변화일까? 먼저 살아본 인생 선배가 하는 조언일까? 아니면 안쓰러운 딸을 향한 아빠의 애정 표현일까? 나는 다시 동물병원으로 출근한다. 다행히 여행을 다녀오고, 근육 치료를 꾸준히 받으며  증상이  좋아졌다. 사실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지만 좋아졌다. 증상이 더 심해질 수도, 오랫동안 이어질 수도 있지만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내 머리가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의 소리를 잘 들으라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게 연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가 역앞에서  ‘아빠 말 명심해~ 잘 생각해 봐! ‘ 하며 건넨 세 번의 당부 때문일까?  서울에 돌아온지 며칠이 지났지만  주문에 걸린듯 아빠의 훈화 말씀이 머릿속을 맴돈다.


너무 대단한 사람 되려고 애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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