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현 Jul 21. 2022

지독한, 그러나 지극한 사랑의 거리

-이창훈 시인의  두 시집을 읽으며


『내 생의 모든 길은 너에게로 뻗어있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푸른 멍으로 새겨진 아픈 말이지만

자꾸만 나에게는

이 별, 이렇게 들린다


헤어짐의 거리만큼

두 음절의 행간에 여백을 주고


이 별


이렇게 떨어뜨려 읽으면, 왠지

슬프지가 않다 왠지 따스해진다


누구나 이 별에서

눈맞추며 손잡고 뽀뽀하고 껴안고

한없이 사랑하다


누구나 이 별에서

애타게 못 만나고 엇갈리고 또

만나서 질투하고 싸우고

한없이 울다


이 별 아래서

이별한다, 그리고는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이 별 아래서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이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별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나는 저 별을 꿈꾸지 않는다  



      - 시, <이별, 이 별> 전문



시집 속에서 시인은 사랑의 '매혹'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그 매혹은 난폭하거나 외롭거나 고독해서는 안된다. 시인이 사랑이 '매혹'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순수함 그 자체다.     

사랑이 순수해지기 위해서는 나와 상대방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시인에게 그 관계는 '사랑의 거리'다.      


'이별'이 '이 별'이 되는 바로 그 거리는 아름답다. 사랑의 슬픔과 아픔이 순식간에 꿈결처럼 승화된다.

'내 기다림의 속도로 저무는 해질 무렵'('하나 남은 말')에 '저기까지만 하고 바래다주면 또 저기까지만 하고 다시 바래다주는'('옛사랑') 두 사람의 거리는 '이 별'에서 가까스로 만들어진 사랑의 거리다.      

사랑의 거리는 결국 시집의 제목처럼 '내 생의 모든 길은 너에게로 뻗어 있다.'라고 시인은 토로한다.


멈추거나 돌아설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랑의 거리다. 언제나 응시의 거리일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그래서 지독하게 아프지만 순수해진다.    

  

'사랑을 잃고 나는 대낮이라 말합니다. 눈부신 대낮의 중심을 걷고 있다고 말합니다.'(백야')라고 탄식을 눈부심으로 바꾸는 힘에 대해서 말할 때 누구나 사랑으로 인해 오래 황홀하지 않겠는가.       

시인은 사랑의 힘으로 그를 향한 길을 내내 걸어가지만 결국은 도달한다.


'보이지 않는 내 마음 속 온종일 걸어다닌다 너는'('살아있다는 것')이라고 말할 때 너와 나의 거리가 사라진다. 마침내 사랑의 거리에서 만나고 합일에 이른다.      

시인의 사랑의 거리는 조밀하고 내밀하다.

내가 다가가는 것만이 아니라, '네 눈 안에서 네 눈 밖의 나를 사랑으로 마주보는 일'('눈부처')이라고 깨달을 때, 사랑으로 나를 바라보는 상대방의 눈이 있을 때 사랑의 정체성은 더 명료해진다.

그럴 때 우리는 사랑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러나 굳이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한 순간도 잠들지 않는 그리움의 속도로 쉬지 않고 너에게 간다.’(‘겨울 바다’)고 말하는 마음이 살아있는 ‘이 별’에서 사랑은 어떤 모습으로도 아름답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이별'조차 아름답게 여기게 하는 '이 별'의 거리를 우리는 이제 사랑의 거리라고 서슴없이 불러보리라. 그럴 때 순수하지 않은 사랑은 이 지상의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사랑은 거리를 좁히려는 행위였다. 사랑은 그래서 진행형이었다. 그런 사랑은 이제 담백하고 담담하다.

거리를 좁히려는 애타는 연연함이 아니라 담담함이다.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





꽃이 되고 싶었다

꽃으로 피고 싶었다

    

너만의 꽃이 되어

네 눈 속에

네 가슴 한복판

너만의 꽃으로 피어나고 싶었다     


물을 주지 않아도

햇살 한 줄기 내려오지 않아도

뿌리내릴 뿌리 하나 없어도  

   

밝고 화사한 얼굴을 들어

태어난 빛깔 그대로

그냥 말없이 너를 보고 싶었다    

 

너 없는 봄날

너에게 영원한 꽃이 되고 싶었다     



    ― 시, ‘조화 造花’        


  

책상에 내내 두고 문득 어떤 그리움이 떠오르면 한 편씩 읽기 좋았다.

누군가에게 부치는 사랑의 시지만, 굳이 누구라고 지명하지 않아도 좋다.

사물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그저 막막한 어떤 추상적인 그림자여도 좋다.  

    

앞서의 시집 <내 생의 모든 길은 너에게로 뻗어 있다>가 아직 그리움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가고 있는 것이라면, 이 시집은 어쩌면 그 목적지에 도착해서 마음속의 멍울이 붉게 꽃으로 피어난 것이라고 단언해도 좋다.      

그러나 과연 도달했을까. 도착했을까.

그리움이란 안개 같고, 연한 구름 같은 것이라서 어떤 목거지에 도착했더라도 또 어디론가 스멀거리면서 가고 싶어서 안달 나는 것이다.


그런 것이다.

그리움은 그래서 깊고 멀고 아득하다.    

  

시인의 다음 시집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그래서 매우 궁금한 이유기도 하다.


두 시집에는 실려있지 않은 시인의 시 <벚꽃나무>를 오래전부터 매우 좋아했다. 그때부터 시인의 팬이기를 기꺼이 자청하면서 시인이 부르는 사랑의 시편들을 열렬히 응원한다.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지독한 그리움과 지극한 사랑의 길을 함께 걸어가 보아도 좋다.


https://brunch.co.kr/@poet30






매거진의 이전글 요강, 해학적 불일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