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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Jul 13. 2022

요강, 해학적 불일치

요강, 참 재밌는 소품이다.

이 놋요강을 떠올릴 때마다, 늘 서정주의 시, <영산홍>이 떠오른다.


"소실 댁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요강은 방안에 있어야 하는 물건이다. 소실 댁과 그 소실 댁을 찾아오는 남자에게 소용되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이제 툇마루에 놓여 있다. 놋요강의 쓰임이 의미를 상실했다.

소실 댁이 기다리는 사람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방안과 방 밖의 기능을 구분하거나, 잊힘과 기다림의 경계에 이 놋요강이 놓여 있다.  

이럴 때 요강은 사랑의 등가물인지, 아니면 배설의 등가물인지 모호한 경계다.

어쨌거나 그 시의, '소금 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라는 표현의 애잔함속에서 이 놋요강은 쓸쓸한 슬픔으로 환원된다.





화장실 문화가 발달한 지금에야 별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그 옛날에는 이 요강은 집집마다 필수품이었다.

집집마다 변소가 없어서 공중변소를 이용해야 했다.

아침이면 마을의 공중변소에 길게 줄을 늘어서서 늘 학교 가는 시간이 늦지나 않는지 조바심치면서도, 학교보다 먼저 친구들을 만나는 장소가 변소 간이다 보니 학교일, 친구들 뒷담화 등, 빨간 손, 파란 손 이야기 같은 온갖 무서운 이야기 등,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없었다.

그 이야기라도 하거나, 들어야 또 배가 아픈 것을 참고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이 가기도 했다.


그러다 변소 간이 생겼지만, 그것도 방과 멀리 떨어진 곳에 지어놔서 밤이면 무서워서 절대 혼자는 갈 수 없어서 형제를 깨워서 졸린 눈을 비비며 가곤 했다.

한밤중에 변소 간까지 갈 때를 대비해서 이 놋요강을 방안에다 갖다 놓았지만,  

어릴 적 이 놋요강에다 오줌을 눌라치면 한겨울에는 차가워서 자지러지곤 했다.

하긴 한 겨울의 무시무시한 뒷간보다야 나은 거지만,

그 시절에는 왜 그리  배설의 장소도 멀고 아득했던지.


그러니 서정주 시의 '신부'라는 시에서 첫날밤 신랑은 방과 멀찍이 떨어진 뒷간에 다녀오다가

신부가 비녀를 풀고 있는 그림자를 창호지 문을 사이에 두고 보고 비수를 빼는 줄 알고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칠 정도였으니,

우리의 배설 문화에서 생긴 비극은 굳이 그 시만 아니어도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삶의 불일치, 우리 문화의 불일치까지 주장하는 것은 나만의 억측일까.





우리의 뒷간 문화가 방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그 거리를 두었다면

이 요강은 또 기묘하게도 방안에 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배설 문화는 가장 멀리, 가장 가까이라는 묘한 불일치의 세계를 선사한다.

어릴 때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 것이다.

아이를 혼자 두고 할 일을 하고 오면 제 똥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것쯤, 한 번은 경험했을 것이다.

요즘 애들도 똥 얘기를 참 즐긴다.

특히 남자애들이 똥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으면 제일 지저분하다고 질색하는 것을 실은 제일 즐기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배설은 멀고 가까운 경계를 허물면서 은연중에 우리의 문화의 경계 허물기들에 일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

더러운 상상이 아니라 즐거운 상상이라는 이 유쾌한 역설이 또 해학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나는 이 요강을 잘 활용할 수 없었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할머니 집이 학교와 가까워서 잠시 살 동안, 겨울밤이 길어서 한밤중에 꼭 잠이 깨면 뒷간을 가고 싶었다.

할머니 집 뒷간은 한쪽 구석에 있어서 바로 곁에 컴컴한 광이 나란히 있었다.

그러니 집처럼 같이 깨워서 갈 형제도 없이 혼자 와 있을 때라서, 뒷간에 가기 무서워서 참을 만큼 참는 게 훨씬 편했지만 때로 그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할머니가 방안에 둔 요강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도대체가 난 겨냥을 잘 못했다.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었으니,,,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그러다가 할머니께 욕먹기 일쑤였고, 그래서 나는 참는 게 훨씬 쉬웠다.


아침에 요강을 부실 때도 정말 주의에 주의를 거듭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자칫하면 들러엎을까보아서 얼마나 조바심을 내곤 했던가. 요강은 손잡이가 없이 매끈하다.

아침 잠결에 힘이 없는 손이 요강을 놓칠까 봐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왜 요강은 다 얼굴이 환히 비칠 정도로 매끈하게 만들까, 가 당시 내 고민거리기도 했다.

손잡이를 만들면 들고나갈 때 얼마나 편할까. 그런데 하나같이 꽃병처럼 매끈했다.

꽃을 꽂아 두어도 이쁠 정도로 환하고 둥그스름하게 이뻤다.

또 우리의 배설 문화가 꽃병과 배설 도구의 경계까지 허물려고 그런 거나 아니었던지, 지금 생각하면 참 나름대로의 온갖 구실을 만들어 문화론을 펼치는 셈이다.

어쨌거나 요강에서 비롯하는 배설의 문화는 이렇게 불일치가 잦았다.





지금도 나는 달리는 차 안에서 마시는 것을 잘 넘기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놋요강을 함께 떠올리는데 겨냥을 못하는 건 그때부터 생긴 습성 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세상을 제대로 겨냥하지도 못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제대로 겨냥하지 못한다.

세상 일도 내 생각과 달라서 번번이 엇나가거나 빗나간다.

때때로 나는 겨냥하지 못하는 내 삶의 불일치를 이 놋요강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아이를 키울 때, 배설 습관을 제일 먼저 가르친다.

아이와 눈을 맞추면서 같이 힘을 주고, 함께 용을 쓴다.

그럴 때 우리의 배설 문화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이 놋요강 하나로 뒷간의 먼 거리를 가깝게,

더러움을 담는 물건치고 가장 환하게  만들어두는 것은, 삶의 불일치를 일찌감치 배우라는 역설적 가르침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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