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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Aug 19. 2022

여름 우체국 앞에서


여름 우체국에는 기를 쓰고 올라가는 능소화와 담쟁이가 담장에 착 붙어있다.

저 얼굴 달아오른 꽃과 시퍼렇게 끈질긴 마음보다 지독한

들키지 않은 그리움을 하나씩 달고 사람들은 우체국 안으로 들어선다.  

지퍼처럼 얇은 우편함 속으로 편지를 밀어 넣는 누군가는

해저 같은 밑바닥에 편지가 오래 머물까 머뭇거리고,

묵은 우체통 안에 그리움 하나 떨어트려 둔 것을 잊을지 몰라

셔터가 내려진 우체국 앞에서 쓸쓸함에 젖어 골똘하다.


우체통이 필요 없는 시대라고 누가 말했나.

여름 우체국 앞을 지나면 바다의 색과 파도 소리를 담은 편지를 써서  

결코 반송하지 못할 단단한 봉인을 하겠다.  

어떤 주소를 쓸지 망설이며 목이 메는 것은

지나간 생의 점점이 그리움 아닌 사람들 없고

먼 시간을 뚫고도 남은 진득한 그리움이

푸른 녹처럼 남은 까닭이다.


여름 해가 너무 길어서 그리움은 발송된 채 아직도 가고 있고

수취인 불명의 편지를 받는 여름은 그래서 더욱 깊고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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