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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Aug 26. 2022

소면을 삶는 시간

무궁화 밤 열차가 대전역에 설 무렵 열차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가락국수를 향해 꽃잎처럼 달리던 사람들.

찢어져서 펄럭이던 국숫집 천 간판이 반쯤 남아 있던 그 장터거리

우시장 곁의 왁자하던 소리를 고명으로 얹어 먹던 사람들.

국수를 삶을 때면 끓는 거품처럼 떠올라 휘휘 저으며

진창 같은 삶도 살만하다고 법문처럼 읊어보는 일이지.

아무렴 사는 일도 물리지 않을 때가 있으려고.

다들 따뜻한 국수 한 그릇 마음으로 후루룩 공양받듯 먹고 갔으리니.


국수를 삶은 날은 되도록 꽃나무 아래 긴 의자를 놓아 두리.

점점이 떨어지는 꽃잎을 맑은 국물 위에 받아서 꽃잎까지 남김없이 먹다가

그대로 가버린 세월이 오면 하나의 꽃으로 피리라.

아아, 소면을 먹을 때면 꽃나무 아래서

흰 면발을 흰 눈을 마시듯 소리 없이 삼키리라.

살면서 꽃 되지 못했지만 시간을 기억하는 나무 한 그루

하나의 이쁜 그리움으로 피리라.


지금 여기 너만 없고

꽃나무와 내가 마주 앉아 소면을 먹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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