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할머니는 한 뼘 햇살이 남은
고방에서 살을 퍼오라고 하셨다.
할머니에게는 늘 쌀이 되지 않던 그 살.
경상도에서는 늘 살로 불리던 쌀
이제 내가 한 톨의 쌀을 안칠 때
왜 할머니의 쌀은 늘 살이었는지 알았네.
자식들의 밥이 되었다가
자식들의 살로 가는
그 순하고 투명한 마음이 어리 비치는 흰 꽃.
할머니의 살을 먹고
또 내가 자식들의 살을 위해 하루를 근심해
청보랏빛 푸르게 걸리는 부엌에 서면
나도 그때의 할머니처럼
쌀이 아니라 살이라고 살, 살 부르며
희고 둥그런 한 공기의 꽃다발을
밥상 위에 공손히 올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