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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웃었다

by 이지현

비 내리는 날은 중국집이 제격이다.

머리칼에 면처럼 뚝뚝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털자

어디선가, '우짜요' 한다.

내 모습이 우스운 것인가.

오늘은 바람과 비를 맞아 추레하게 낡은 옷

흔한 명품 가방은 애시당초 없어

까만 모나미 볼펜과 시집 한 권이 든 검정 가방

아무리 앞뒤를 재어봐도

삶을 배우러 다니는 사람의 몰골.


까르르 웃는 그들 앞에

김이 무럭 거리는 우동과 짜장이 나란히 놓인다.

'우짜요' 웃음을 보태는 종업원의 말에

내 마음도 '웃자'로 화안해지고

빗방울 맞은 꽃잎처럼 펴진다.

아, 우동과 짜장의 다정한 병렬.

저런 말의 수축이라면

내 생이 잠시 오그라들어도 괜찮겠다.

나도 누군가의 삶에 짧게 스며들어

따뜻한 국물로 남으면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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