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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Dec 24. 2020

지진 방석을 아세요

- 우리 아이들도 적극적인 지진 대피 훈련이 필요하다


  

지진 방석이 있는지도 몰랐다



경주에 규모 5.8 지진이 발생했었다. 근래 들어 발생한 한반도 최대 규모 지진이라고 했었다. 그날 퇴근하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늘 보내는, 지금 집 가는 전철 탔음을 보내려고 하는데, 카톡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당시 아직도 쓰냐는 핀잔을 듣던 갤 3 폰이라서,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었다.

얼른 LTE로 바꿨지만 그래도 연결이 전혀 되지 않았다. 전철 안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 비로소 지진이 일어난 줄을 알았다.


집을 짓고 있는 동안 지진 대응 법제가 달라지는 바람에 다시 내진 설계가 변경되기도 했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122322170966448&cast=1&STAND=MTS_P


지금 막 긴급 뉴스로 경기 파주 인근 지진 소식을 전한다.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라는 안이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왔다. 지진은 하늘에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비로 인한 홍수나, 한꺼번에 당하는 가뭄이 아닌, 국지적인 곳에 치우치기 때문에 재해를 당한 사람에게나 심각했지 그렇지 않은 지역은 중요한 일등, 즉 농사 등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지진은 다른 재해보다 그 대응이 안이했다.


일본서 살다 오면 지진이란 일상이면서도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절절히 깨닫는다.

지진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일본에서  살 때 소학교에 아이를 보냈다. 다음날 담임선생님이 아이가 앞으로 학교서 쓸 여러 가지 준비물 목록을 적어 보냈다.  

일본을 간 다음 날이지만 익숙하지도 않은 일본 가게들을 돌아다니면서 목록에 있는 것들을 준비했는데, 딱 한 가지를 사기가 힘들었다.


준비물이 방석인데 그 방석을 파는 곳이 동네에 없었기 때문이다.

전철역이 있는 곳의 작은 백화점까지 가서야 겨우 방석을 구해서 다음날 아이 편으로 보냈다. 속으로는 일본의 의자는 얼마나 딱딱하길래 아이들의 방석까지 필요한 것일까라고 생각하면서.



지진 방석


그랬는데 이게 웬일인가, 일본 선생님이 도로 방석을 돌려보낸 것이다. 더 폭신한 것을 보냈어야 했나. 의자와 크기가 맞지 않나, 오만가지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방석을 하나 구입해서 아이에게 주었으니 내가 보낸 방석은 괜찮다는 말을 쪽지에 써서 보냈다. 내가 구해서 보낸 방석은 한국식으로 그냥 깔고 앉는 방석이었다.


주말에 아이 편으로 선생님이 빨아오라고 보낸 방석을 보고서야 아뿔싸!

방석의 모양이 전혀 달랐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모양이라 아이에게 물어보니 지진대피훈련 시에 일본 아이들이 평소에는 의자에 깔고 앉았다가 갑자기 모두 그걸 머리에 쓰더라는 것이다.

방석은 한쪽이 터져 있어서 그것을 머리에 쓰고 자신의 책상 아래에 쑥 들어가서 다 쪼그리고 앉아서 지진이 지나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아하, 말하자면 바로 지진 방석이었다.

한국에서 살면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방석이고, 훈련이었다.




지진 일기도 썼던 날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지진이 일어난 것을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지진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일본은 소학교 저학년 아이들부터 지진 훈련을 수시로 시키는 것이었다.

아이가 소학교 들어간 다음날부터 바로 지진대피훈련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하긴 일본 동경에 처음 당도한 날, 방문을 여는데 전깃불이 팟하고 꺼져버리면서 집이 통째로 흔들렸다. 가는 날부터 지진을 제대로 실감한 터였다. 두렵고 무서워서 공포영화 딱 그대로였다. 세아이를 꽉 껴안고 그 밤을 어떻게 지냈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잊지 않고 있는, 일본에서 산 1년 동안 지진 횟수는 딱 76회였다. 일본에 도착한 첫날부터 혹독하게 지진을 당해서 오죽하면 지진 횟수를 세어놓은 지진 일기를 쓴 셈이다. 그것도 체감할 수 있는 지진의 횟수였다. 일본서 살면서 지진에 이력이 나서 그냥 흔들리는 것 정도는 지진으로 치지도 않았다. 뭐라도 내려앉아야 지진이었다.



지진으로 무너진 골목


이제 한국도 지진 안전대가 아니다.

안전 불감증의 시대에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일에까지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카톡이 끊어지고, 집에 와서도 한참 동안 연락이 두절되던 그 순간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지진은 예측도 없이 온다. 홍수나 가뭄이나 다른 재해는 미리 예측이나 되지만 지진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우리도 아이들 때부터 적극적으로 지진대피훈련을 시켜야 한다. 남의 나라 일처럼 강 건너 불 보듯 해서는 안될 때다. 지진으로 소란이 났을 때는 그나마 지진 대피 훈련이랍시고 한 두 번 연습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학교를 가게 될 때는 매주, 매달 습관처럼 시켜서 어떤 재해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정에서라도 주기적인 훈련과 대응 연습이 필요하다.


지진 방석을 하나씩 의자에 깔고 있다가 여차하는 순간에 머리에 뒤집어쓰는 그 훈련된 예방법이 아직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이들의 존재가 얼마나 한 나라의 대들보가 될지 생각하는 그 미래형 보험이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커가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재해와 재난에 대비하는 연습을 이제 어른들이 반드시 배려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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