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현 Dec 07. 2020

벚꽃 날리면 열렬히 사랑하라

- 당인리 발전소 벚꽃 풍경이 부른 동경 우에노 공원의 영화 같은 사랑


꽃은 죄가 없다



당인리 근처로 이사 와서 벚꽃이 필 무렵, 여의도가 가까워서 좋아라 했다. 여의도 밤 벚꽃놀이를 비로소 할 수 있겠다고 바람에 날리는 흰 벚꽃처럼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런데 벚꽃 명소가 당인리 발전소 부근도 유명하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와, 이런 복 터진 일이 있나. 그럼 이제는 벚꽃 필 무렵만 되면 그냥 동네 골목만 걸어도 벚꽃 명소인 셈이다. 그리고 이사 와서 벚꽃을 원 없이 실컷 보았다. 


저녁 무렵에도 방해받지 않고 걸으면서 즐기는 당인리근처 골목 꽃길, 오래된 빌라 골목마저 벚꽃 천지다. 당인리 발전소 가는 길


당인리 근처 벚꽃길을 걷다가 문득 추억 하나를 불러내기도 했다. 


그때 동경에서는 텔레비전만 틀면 벚꽃, 벚꽃이었다.

일본의 국화인 벚꽃이라니, 그걸 가서 우리가 아름답다고 하면 안 되지 않을까. 이 생각조차 사실 식민지적 잔재였지만 그래도 동경의 벚꽃놀이에 동참하는 건 그 많은 소설 속에도 등장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헤집고 간, 한반도의 비극을 배신하는 일이라고 애써 외면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새 벚꽃 날리는 풍경에 젖어, 그래, 동경의 벚꽃놀이는 어떻게 하는지 한 번쯤 똑똑히 보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이 바뀌다가 어느 날,


아, 꽃이 무슨 죄가 있나, 로 생각하며 동경에서 가장 화려한 벚꽃놀이가 펼쳐진다는 우에노 공원으로, 유모차까지 끌고, 뒤뚱거리며 걷지도 잘 못하는 어린 두 아이와 함께, 도시락을 싸들고 이미 만원인 JR선을 타고 가고 있었다.  


일찍 간다고 나섰는데도 우에노 공원은 이미 전날부터 돗자리를 펴놓고 밤샘을 한 사람들까지 꽉 차서 앉을자리조차 없었다.

서울에서 여의도 벚꽃놀이도 가본 적이 없는데, 남의 나라에 와서 벚꽃놀이를 본다고 만원 버스보다 더 심각한 상황의 공원에 허우적거리며 와서 돗자리 깔 자리를 찾느라고 기웃거리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일본인들의 유별난 벚꽃 사랑이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지켜보고 싶은 생각도 더 많았다.

하긴 창경궁 야간 벚꽃놀이는 구경한 적이 있다. 야간의 벚꽃나무들은 낮보다 더 환했었다.


우에노 공원의 명당자리들은 이미 돗자리들이 다 깔려 있어서 이방인인 우리는 먼발치에 돗자리를 깔았다. 사람들은 이미 전날부터 음식들이며 과일들을 싸와서 질펀하게 먹고 있었지만, 뜻밖에도 공원은 질서 정연해서 어느 누구도 어수선하게 굴거나,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어떤 모습도 보이지 않아 마음속으로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쓰레기 하나 없이 깔끔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겨우 자릴 잡고 돗자리를 깔았지만, 가끔 동경에서 살면서 느끼던, 차별감을 시선으로 당하던 중이었다.

살던 곳에서는 우리를 알던 사람들이나 이웃은 유별나게 친절해서 사실 동경서 살 때 그릇 하나도 사본적이 없었다. 소학교 다니던 아이가 문구를 하나 사본적이 없을 정도로 야단스럽게 친절했다. 물론 이것도 다 소학교 다니던 아이 덕분이었지만. 그랬다.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저 사람이 자신들보다 조금 잘한다고 생각하면 그들의 친절은 그 끝이 안보였다.


그러나 낯선 거리를 가거나 낯선 장소에서는 늘 한국인이냐고 묻고는 눈빛이 달랐다. 그런 시선이란 우리가 한국에 살면서도 가끔씩 외국인을 만날 때의 경계일 수 있었다. 이런 불편한 경계들이 골이 깊어지고 심화되면 배타적이 되고 위험한 이웃들이 되는 셈이다.



영화 같은 사랑이 시작되었다



돗자리를 깔고 앉자마자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한 사내를 보았다.

벚꽃놀이와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양복 차림은 흡사 벚꽃을 조문 온 사내 같았고, 게다가 흰 장갑이라니, 그것만이 아니라 거의 열 살짜리 아이 키 정도의 큰 액자를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먹을 걸 바구니에 들고 오는 다른 사람들의 차림새와는 단연코 반대인 그 사내는 가장 먼저 눈에 뜨였다.

이방인인 나는 벚꽃잔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 사내가 무얼 할지, 혹은 이 놀이를 한 방에 무너뜨리기 위한 어떤 조직의 일원일지도 모른다는 너무 영화적인 상상을 하면서 그 사내를 예의 주시했다. 아니면 어디 영화 촬영이라도 하러 온 배우인지도.


그는 두리번거리면서 사람들이 번잡하지 않은 벤치로 가서 액자를 조심스럽게 곁에 세워놓았다.

아니, 하도 조심스러워서 앉혔다는 말이 맞다. 

이건 또 무슨 짓이란 말인가. 자신은 그냥 앉으면서 그 액자를 놓는 자리는 손수건을 꺼내 또 깨끗이 닦는 것이 아닌가. 벚꽃은 너무 눈부셔서 그만 제외하곤 사람들은 모두 너무 환했다. 왠지 나는 시선을 떼지 못하고 보고 있었다.





벚꽃이 비처럼 내리기 시작하자 그 사내는 혼자 어찌나 웃으면서 말을 열심히 하고 있던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구나 생각했고, 위기감까지 느껴 세 아이들 단속에 집중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그 사내는 공원의 어떤 질서에도 동화되지 않지만, 또 그 질서를 방해할 생각도 없는 듯이 보였다.

내내 웃으면서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는 듯해서 너무 궁금해 그 사내의 앞을 슬쩍 지나쳐보기로 했다.


아,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 사내가 가지고 온 액자는 여성의 사진이었다.

어찌나 미인이던지 눈이 부실 정도였다. 여배우 사진을 들고 왔나 했다.


꽃이 아로새겨진 기모노 차림을 하고 사진 속에서 이 세상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환한 웃음을 띠고 있어서, 마치 그 검정 양복을 입은 사내와 사진 속 그 여자가 꽃비 속에서 방금 결혼식이라도 끝낸 것처럼 웃으며 환했다.

그 사진 속 여자를 아직도 죽은 여자라고 단정 짓고 있는 건 그 사내의 검은색 양복 때문일 것이다.


그 사내는 우리가 우에노 공원에서 자리를 뜰 때까지 그 자리에서 끝없이 그 사진 속 여자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손을 들어 여기저기 가리키며 우에노 공원의 벚꽃놀이 광경을 여자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우에노 공원에 있을 동안 나는 눈부시게 날리는 벚꽃보다는 그 사내만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사랑이 놓인 풍경 하나



가슴이 서늘해서 슬픔이랄까 쓸쓸함이랄까,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꽉 차올라서 나는 마치 사랑을 다 해버린 것처럼, 또 사랑을 다 잃어버린 것처럼, 삶을 다 알아버린 것처럼, 삶을 다 살아버린 것처럼, 혹은 삶을 지금 생생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염없이 내리는 벚꽃비 속에서 우두커니 서있었다.


아직도 우에노 공원의 벚꽃비가 올 때면 그 사내는 사진 속 그 여자를 데리고 벤치에 앉아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나 혼자 벚꽃철이 오거나, 생이 그리워질 때 아직도 잊지 않고 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가끔은 풍경은 풍경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이렇게 삶이 놓인 풍경이 생의 한가운데서 고독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한 편의 시를 그날 밤새 끙끙거리며 잠도 자지 못한 채 쓰고 있었다.



그 해, 우에노 공원에서 그 사내는

낯선 나라의 말을 못 하는 여자가

슬픈 사랑을 지켜보던 일을 알고 있을까.


그 벤치에는 이승에서 가장 먼 고요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벚꽃이 지고 있었다.


그 사내는 그 해, 우에노 공원에

여자의 벚꽃보다 환한 웃음만 끌고 왔을까.

그 여자가 남기고 간

터진 발꿈치, 지문이 낡은 손을 가만히 놓치고

기억 속 편린은 벚꽃 빛의 기모노만 입히고 있었지.


그 여자에게는 세상이 벚꽃 이파리처럼

화사하거나 찬란하지 만은 않다는 것을

그 사내도 끄덕끄덕 알았을 것이다.

다만 구태여 속살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 해, 우에노 공원에선

낯선 나라의 말을 못 하는 한 여자도

벚꽃보다 눈부신 사진 속 여자에게

꽃이 지며 하나의 적막이 눈부시게 닫히고

고독한 절멸이 내려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웃으며 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우에노 공원 그 벤치에

그가 놓고 간 둥근 사랑하나를

낯선 나라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여자 혼자

오오래 기억하고 있음을 그는 알고 있을지.

삶 하나가 툭, 지고 있었음을.





매거진의 이전글 추억을 가르치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