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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Dec 29. 2020

흐뭇한 골목 풍경이 된 나무 한 그루

- 백석의 갈매나무가 당인리에도 서 있었다


갈매나무 한 그루 마음에 심다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중에서


집을 짓고 봄의 끝 무렵에 이사를 왔다. 어느 날 거실에 서서 창밖을 본 순간 저 멀리 선 나무 한 그루와 불시에 딱 조우했다.

순간적으로, 그 나무는 마치 하늘에 뿌리를 내린 듯 새파랗게 서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내려다본다고 느꼈다. 유독 하늘이 파랬고, 구름은 하얗게 흘렀다. 오래 묵은 동네에서 시퍼런 힘으로 굳고 씩씩한 대장처럼 서 있었다.



봄부터 여름,  집의 거실에서 바라본 푸른 나무 한 그루, 2020. 5월 당인동



그 나무를 본 순간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그 갈매나무가 불현듯 떠올랐던 이유는 모르겠지만, 백석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 갈매나무가 있다면 바로 저런 나무 이리라고 생각했다.


해방이 된 1948년에 백석이 쓴 이 시는 혼자만의 외로움과 고독을 극복하는 정신적 지주로 갈매나무를 인용함으로써 순식간에 인간의 의식을 고양시켰다. 어떤 외로움이 몸서리치게 급습해도, 또 슬픔으로 자지러져도 그 갈매나무만 '굳고 정하게' 서있으면 어디서나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나무 한 그루로 생생하게 자리 잡았다.


당인리의 골목 풍경에 자리 잡은 저 푸른 나무 한 그루도, 구름이 함부로 흘러 가버리거나, 사람 사는 모습이 가난한 정신으로 둘러져있어도 그냥 그 자리에 서서 묵묵하다. 묵묵하다 못해 의연하다. 마치 두 팔을 활짝 치켜들고 여길 보란 듯이 우뚝하다. 그리고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저 푸른 그늘로 안심하라고 토닥여준다.

이사 온 봄의 마지막 무렵부터 저 나무를 바라보면서 의지가 둑처럼 허물어질 때나, 하루가 지칠 때 위로받는다.  


 가장 외롭지 않을 방법을 저 나무 한 그루는 가장 조용한 방법으로 가르쳐준다.




슬프고 지친 삶을 위로해주는 나무 한 그루



늘 푸를 것만 같았던 그 나무 한 그루가 가을이 되자 스스로 사색가처럼 변한다. 이런 나무의 변모를 보면서 계절이 수없이 바뀌었을 동안 그들의 나이테에 담았을 시간들을 생각한다.


바람의 냉혹한 차가움이나 세찬 비의 흔들림에도 끄떡없이 서 있었을 나무 한 그루.

나무를 함부로 베지 않는 것이라고 어릴 때 어른들은 그랬다. 동티 난다고 했다. 어릴 때 집 뜰에 서 있던 오래된 가죽나무를 베던 날도, 동네 오래된 고욤나무를 베던 날도 모두 모여서 고사를 지냈다.  



가을, 노랗게 단풍 든 나무 한 그루, 집의 어느 공간에서 보아도 늘 굳고 정하다.  2020, 10월, 당인동


  

나무를 베면서 무탈하기를 바라던 마음을 생각하면 저 먼 단군신화 속의 신단수를 떠올린다. 나무는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하나의 신화가 되고 우주가 된다.

나무는 땅과 하늘을 동시에 이어주는 유일한 존재다. 땅 깊이 뻗어 들어가면서도 또 하늘을 끊임없이 지향한다. 그대로 가장 겸손함을 가르치면서도 가장 고고함을 동시에 가르친다. 온몸 하나로도 수많은 말을 하고 일깨운다.

이제 나무는 그냥 거기 그렇게 서있는 나무가 아니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 문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워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 박목월 <나무> 중에서



묵중하고 침울하면서 고독한 목월의 나무가 되어서 마음에 길러보기도 하고, 의지와 정신적 고양의 백석의 나무가 되어서 마음속에 심어 보면서 하루를 위로하면서 보낸다.


헤세는 <나무들>에서  '제일 감명 깊은 설교자'로서 나무는 매일 충분하다고 말했다.

우리의 삶이 슬프고 감당하기 어려울 때 나무는 우리에게 삶은 쉽지 않은 것이며, 또한 어렵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는 헤세의 말을 생각하면서 위로한다.





뽑아낼 수 없는 서낭나무 한 그루



여름부터 겨울까지 한 계절이 돌았다. 나무는 어느 한 군데 변하지 않고 그대로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묵묵하다. 가지고 있던 것들을 다 던지고 떠나보내도 말없이 삭인다.



겨울, 고독한 나무, 집의 거실에서 바라본 한 그루 나무. 2020, 12월 당인동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 황지우 <겨울 - 나무로부터 봄 - 나무에로> 중에서



이렇게 겨울과 봄을 거듭 살아오면서 나무 한 그루는 그 자리에서 부동의 자세로 산다. 그리고 이 집에 사는 한 언젠가 나의 죽음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삶을 바라보듯이.


언젠가 국어 교과서에 '내나무' 에 대한 글이 실렸었다.

남도 지방에서는 태어난 아기 몫으로 나무를 심었다. 딸이면 밭두렁에 오동나무를, 아들이면 선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태어난 나의 몫으로 심은 나무라 하여 ‘내나무’라 불렸다. 딸이 시집갈 때면 오동나무를 잘라 장롱을 짰고, 아들이 늙으면 선산에 심은 소나무로 관(棺)을 짰다.

나무는 이렇게 오래전부터 인간과 더불어 생사를 나누었다.  


나는 저 나무의 자리와 실체를 알고 싶어서 동네 골목을 돌았다. 바로 앞에 서 있는 나무 같았는데 나무는 골목을 가는 동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실재하는 나무가 아니라 마치 먼 신화 속의 신단수를 만나러 가는 길인 것처럼 느껴졌다. 동네 골목을 걸어가는 시간이 마치 시원의 어느 한순간을 떠가는 것만 같았다.


 

당인동 부군당, 2020. 겨울 당인동



골목을 그대로 완전히 한 바퀴 돌아서야 나무가 나타났다.

동네 부군당을 지키고 선 神木으로 살아있었다. 동네 수호목인 서낭나무였다.  

이제 나무는 엘리아데의 나무처럼 마음속에 뿌리내리는 어떤 나무로 존재한다.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나무가 된다. 엘리아데는 나무를 `우주 중심의 상징'으로 간주했다.


우리에게는 먼 단군신화 속 신단수가 있었다. 그리고 <용비어천가>의 '뿌리 깊은 나무'로 이어진다. 우리에게 나무는 결국 안녕과 위로와 무한한 신뢰로 남는다.


동네의 신목으로 살고 있는 나무 한 그루는 은행나무다.

우리 주변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들은 신목의 상징성을 지녔고, 마을의 안녕을 상징한다. 그리고 장수와 행복의 상징이다. 공부하는 공간에 심어졌던 나무기도 하고, 자손의 번영을 비는 사당에도 심어졌던 나무가 은행나무였다.  

 

나무 한 그루가 동네 골목의 풍경을 그대로 껴안고 있는 흐뭇한 골목을 휘돌아 걸었다.

영영 뽑아낼 수 없는 나무 한 그루가 마음속에 굳게 자라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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