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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Mar 22. 2021

죽지 않는 시

- 시집을 낸 후에

    


시를 쓰고 돈이 한푼도 안되는 것을 알았다.

순대국밥 한 그릇 값 겨우 되는 시집.

그마저 에누리하면 스타벅스 커피 한 잔 값도 치지 않는 시집.

- 오규원, 예술가의 이름을 메뉴판으로 만든 비장한 시인

- 김광섭, 한 편에 이천원, 삼천원의 시값을 쳐서 받은 시인.

- 박목월, 자신을 신발이라고 자조하면서 가정에 들어온 시인.


따지고보면 시를 쓰는 시인이 슬픈 것이다.      

별들이 찔러대는 고통을 안고 투잡을 하던 중에

참을 수 없는 구토증을 느껴 그 별들을 다 뱉어낸다.

그제야 수선화처럼 향기롭다.     


다시 돈이 안되는 시를 써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다.

아침마다 내 시를 읽어달라는 어떤 어머니가 계시단다.

나이 오십인 딸에게 꼭 내 시만 읽어달라는 늙은 어머니를 두었단다.

아침마다 아, 너무 좋다, 그렇게 말한다는 음성이

나에게는 추억이 너무 시리다로 들리게 하는

그 여자가 나에게 시를 쓰게 한다.      


시외전화비가 시집 값보다 벌써 몇배나 들어갔다는 여자.  

앞으로도 아주 많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여자.

밥이 되지 않는 시들이 아침마다 통통,

가느다란 탯줄같은 따뜻한 교량을 타고 간다는 위로.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시가 누군가에게

추억이 되어서 걸어가고 있다.


시인들이 시를 쓰는 이유를 이제 다 알아버렸다.

오늘도 나는 시 한편을 따뜻한 난로 위에서 굽고 있다.     



#오래 전 시집을 낸 후, 한 독자의 연락을 받고 왈칵 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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