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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May 16. 2021

푸른 시간

더 이상 외롭다는 말은 않으리.

오래 묵상의 시간을 견디고 있을 뿐

한 번은 그 오랜 침묵을 깨고

물거품처럼 옅은 그리움을 버릴 것이다.      

 

그 봄과 여름 사이

우리는 숱한 음모를 계획했고,

수상한 낭만이 흐르는 강 언저리나

헛소문 만발한 그 꽃핀 들녘에서

오래 그리워할 것처럼 눈짓했지만      

인생은 사이비교주처럼 짐짓 속이며

또 한때는 열광할 수 있는

푸른 시간임을 알고 있었다.   

  

정녕코 사소한 기억은 하지 않으리.

이 지상에서 우리가 안 적이 있었음을.

그저 가는 비 그친 사이

은은히 피어나는 눈물에 적신 얼굴 위,

누군가 가만히 드려다 보고 물으면

강물 건너가는 안개에 젖었노라

빈말이나 하며 떠날 것이다.   


지상은 온갖 고독으로 피는 빈 방이었다.

우리는 아주 잠깐도 만난 적이 없었다.

사랑은 더구나 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굳이 누군가 묻는다면

푸른 시간의 한 언저리

순결한 까마귀처럼 서성거렸다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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