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편지를 쓰는 저녁

by 이지현

여름에는 긴 편지를 쓰지 않겠습니다.

허전한 꽃잎 분분히 져내리는 푸릇한 날에

가벼운 꽃잎만 넣어 부치겠습니다.

저 멀리 먼 산의 등이 검푸른 까닭은

이름 없는 풀들이 그 산에 오래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의 그 푸른 호수도 여름날 꿈결처럼 날리는 꽃잎을

지금도 물결 위로 받으며 가두고 있겠지요.


이 편지도 여름의 기억을 가두고 있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추억이 갇힌 계절이 있겠지요.

그 해 여름은 상처가 오래 무거웠습니다.

너무도 쓸쓸한 날들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모래사장처럼 넓었습니다.

여름의 끝을 향해 걸어갈 때 뒤따라오던 바다가 툭 터졌지만

차마 꿰매지 못할 사이 겨울이 와서 언 채로 버려졌습니다.


그래서 여름에는 긴 편지를 결코 쓸 수 없습니다.

겉봉투에는 네모난 슬픔 하나 붙이겠습니다.

주소는 알지 못하니 꽝꽝 언 슬픔이 어쩌면 해마다 여름이면

눈물처럼 녹아내려 조금씩 발각 되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비로소 눈치챈 그대가 먼 길을 헤매다 올 때까지

올여름도 그리움은 들키지 않게 무사히 봉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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