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곁 늙은 나무 그늘, 그 아래 평상 위에는
종일 여름 볕에서 생생한 밭을 매던 사람들이
열무 얼갈이김치 아래 뚝뚝 끊어지는 흰 국수로
퉁퉁 불어 검게 탄 고달픔을 속였다.
세상도 쉽게 속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담장 아래 노란 호박꽃이야 모른 척 할터.
시고 짠 김치 국물로 한 생애처럼 돌돌 만 국수를 먹으면
남은 시간은 김치 국물처럼 희미해질 것이다.
어느 날 저물 무렵 뜻밖에 기억하는 것은
한낮의 땡볕이 쨍쨍 내려쬐던 여름날이 질펀해
시퍼렇게 익어가던 것들은 온몸으로 푸지게 몸을 비틀어
제 자리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일.
느낌표 같은 비나 진창 왔으면 하던 세월과
올챙이처럼 배나 한번 오지게 불렀으면 했던 시간에도
국수는 여전히 햇볕에 잘 말라가던 것을
담벼락을 꽉 붙든 노란 수세미꽃과 흰 박꽃이 함께 보던
환한 여름 풍경이나 진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