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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Oct 23. 2021

 참빗의 시간

 

한낮의 햇빛이 놀다간 반짝이던 장독도

어둠을 빨아들여 보이지 않았다.

새벽이면 퐁퐁거리며 솟는 우물도

깊고 깊어서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가 참빗을 들고

사악사악 긴 머리를 내려 빗는 새벽

동백기름만 남은 별빛에 흔들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호지 문 저 편.

언젠가 할아버지의 꽃상여가 떠난 길.

긴 골목길의 인기척 하나 없는 적막 속으로

누군가 저벅거리며 걸어오고 있었을까

아무리 함께 들여다보아도 나는 보이지 않는 그 길.


할머니는 흐린 호지문 너머로

옥빛 비녀를 꽂은 채 새벽을 지켰다.

할머니의 참빗은

시간을 빗는 쓸쓸한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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