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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은 Apr 30. 2022

제주의 태양이 입안에서 살살 녹아드는

1  봄의 햇살


지난 추석에 이어 올해 설에도 제주도 부모님 댁에 가지 못했다, 아니 갈 수 없었다. 누가 이런 세상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국제화로 세계화로 멀리, 더 멀리 더 밖으로만 향하던 우리에게 2020/2021년 집은 그야말로 우리의 직장, 놀이터, 식당이 되었다. 나는 10년간 밖에서 살았다. 탈조선도 아니었고 인생을 살다 보니,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그곳에서 흘렀다.


문득, 나 개인의 의지만이 아니라 전염병이라는 시대적 난제 앞에 멈춰 서서 나는 찬찬히 생각해본다. 이제


어떤 맛 나는 인생을 살고 싶은가.

어떤 맛을 만들고 싶은가.
어떤 맛을 누구와 나누고 싶은가.


귤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제주도에서 귤 과수원을 운영하셨다. 그렇다고 부모님을 농부라고 부르기에는 과수원이 큰 것도 아니었고, 다른 주업이 있으시면서 과수원을 돌보신 거라, 부모님의 노동량은 파트타임 수준이었다. 하지만 과수원은 어릴 적 나와 오빠의 축구장이었고, 봄이 되면 귤꽃 냄새를 맡게 해주고, 여름이면 탱글탱글 귤열매가 영글던 곳이었다.


겨울에는 귤을 따기에 정신이 없었는데, 어릴 적 그 작은 눈으로 보아도 과수원 한구석에 버려지는 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주도에서는 아주 작거나 큰 크기의 귤은 판매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귤의 상품성을 유지하여 헐값에 팔지 않으려는 나름의 생존법이다. 여름에는 튼실한 귤을 더 튼실하게 하기 위해 멀쩡한 청귤을 속과 하여 버리셨고, 겨울에는 일 년 동안 공들여 키운 아주 작거나 아주 큰 귤을 과수원 구석에 버리시곤 하셨다. 사실 아주 작은 귤이 제일 맛있다. 아버지는 작으면서 껍질이 오돌토돌한 녀석만 따로 모아 놓고 겨우내 드신다.


작년에 찬바람 맞으며 귤을 따던 중에 스치는 한 생각.

저 버릴 귤로 와인을 만들면 어떨까.


외할아버지는 젊으셨을 때 양조장의 공장장이셨다. 나는 그 양조장을 본 적도, 할아버지가 양조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1960/1970년대에 양조장의 대단위화와 통폐합 정책으로 제주도에는 한라산소주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요즘 인기를 끄는 크라프트 비어, 2009년 불었던 막걸리 열풍은, 어떻게 보면 한동안 억눌렸던 진짜 술에 대한 맛을 갈구하는 요즘 사람들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생각해본다. 여하튼 내 DNA에 할아버지의 양조기술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기를 바라며 ‘청귤와인을 만들어 보자’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 결심은 올해 초에 했다. 그런데 수입은 없지만 직업이 영화 시나리오 작가인지라, 그 일을 내팽개치고 와인을 만든다는 것에는 뭔가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뒤따라왔다. 내가 20년 동안 노력한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느낌과 아직은 그만둘 때가 아니라는 막연한 생각이 와인 한 병 만들기를 멈추게 하고 있었다. 서울문화재단의 일상문화[BLANK]와 <감정출판>을 핑계와 채찍 삼아, 나만의 맛 기행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렇게 첫 글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와인맛

술맛

인생맛


Wine as Bottled Poetry


모든 세상의 이치엔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내가 10년 동안 한국을 비운 사이, 한국은 많이 변해있었다. 아직도 나는 그 변화를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양극단을 달리는 사람들과 양극단의 그룹들, 서로 소통이 없는 사람들과 이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소통 자체를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들. 내 와인의 맛은 과연 밸런스를 잘 맞출 수 있을까.


사람들의 의견도 그렇듯, 맛은 상당히 주관적인 영역이다. 시간과 장소와 사람에 따라 맛은 다르게 인식되고 그 맛을 표현하는 방식도 상당히 다르다. 맛은 눈에 보이거나 듣고 비교해 볼 수 있는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감각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주관적인 경험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맛을 표현할 때 ‘비유’와 ‘은유’를 사용하곤 한다. 맛은 과학적으로 분석되기도 하고, 의학적으로 해석되기도 하며, 맛을 다루는 소믈리에와 셰프에 의해 미학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와인을 마시고서 어떤 과일 맛이 난다거나, 미네랄, 허브, 고기 맛이 난다고 표현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와인에 들어있지도 않은 ‘블루베리 맛이 난다’라거나 ‘장미 향이 난다’, ‘비를 맞은 나무의 냄새가 난다’라고 표현하는 와인 전문가들도 흔히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첫맛은 달게 입가로 와 적셨다가 코를 만나고는 그다음 뇌를 기쁘게 한다.’라는 표현은 맛이 시간성까지 품고 있다는 사실도 생각하게 한다. 와인은 점수로 매겨져 숫자로 표현되거나 별 개수로 표현되기도 한다.


객관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와인’과 ‘동의할 수 없는 와인’은 존재한다고 가볍게 생각해본다. 누구는 ‘대중의 맛’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고, ‘Sweet’, ‘Medium’, ‘Dry’ 영역 안의 맛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맛을 새롭게 표현할 수는 없을까? 그동안 맛을 표현한다는 것이 우리의 삶과 문학에서 도외시되지는 않았나? 맛과 삶을 연결하는 고리는 약하지 않은가? 맛이 주는 느낌을 여러 가지 삶의 경험과 느낌으로 표현해, 그 맛을 더 잘 상상하고 맛보게 할 수는 없을까? 그리고 아직 세상에 없는 맛을 만들어 가는 글을 읽으며 그 맛을 상상해보는 느낌은 또 어떨까?


나는 청귤와인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여러 가지 국내·외 레시피를 읽고 고민하며, 나만의 새로운 맛을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이 새로운 와인의 맛이라는 것이 내 영역 안의 일일 수 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거듭해본다. 올해는 장마가 지난해처럼 엄청나게 길어서 청귤의 당도가 낮을 수도 있고, 내가 쓰는 발효 효모의 종류든 양이든 시간이 적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에게 맛있는 맛을 찾아보고, 여러 사람의 맛 표현도 들어 보고, 새로운 맛도 찾아가 보고, 다음 해에는 더 맛있는 청귤와인의 맛을 찾아가는 것은 세상살이와 너무나도 닮았다고 생각하는 하루이다.







글 최정은 @greentangerine_jeju

그림 윤미선 @studio_misun      


이 글은 2021 서울예술교육센터 감정서가 출판워크숍 <감정출판>의 참여를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https://www.sfac.or.kr/site/SFAC_KOR/08/10827010000002020102202.jsp


이 글은 2021 서울문화재단 일상문화[BLANK] 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i_sfac/222625885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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