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여름의 태양
올해 초에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정해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통해 심리상담 12회를 받았다. 상담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내가 그동안 장편영화 시나리오작가/감독 데뷔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오면서 항상 ‘완성’을 위한 ‘준비’의 삶을 살다 보니, 많이 지쳐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장편영화라는 하나의 고정된 그리고 매우 이루기 힘든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다 보니, 다른 가능성 있는 요소들을 배제하면서 살아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의 영화 캐릭터들의 감정과 나와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의 감정은 속을 훤히 들여다보듯 잘 알면서도, 정작 나의 감정을 알고 표현하는 데에는 매우 서투르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20년 동안 영화라는 매체에만 한정되어 있었는데, 올해 ‘다양한 글을 써보자’ 그리고 영화 촬영을 위한 미완의 글인 시나리오가 아니라, 작지만 ‘완성하는 작업을 해보자’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시를 슬금슬금 쓰기 시작하는 나를 발견했다. 8월 말부터 월급쟁이처럼 하루에 한 개 총 64개의 시를 썼고, 시의 수준이 어떻든지 간에 올해 말 시집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내 시 안에는 영화에서부터 제주, 서울, 런던, 가족들, 지인들, 처음 만난 사람, 술 만드는 과정 등등 그동안 나의 마음을 스쳐 갔던 많은 것과 사람들이 고스란히 등장했다.
나 스스로와의 약속인 매일 자정 원고 마감을 64번 지켰다. 같이 작업하는 작가들에게 지나가는 말로 약속했던 ‘시 챌린지’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축하 카톡을 받았을 때, ‘아, 내가 영화 말고도 다른 것을 할 수 있고 완성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던 것 같다. 그동안 영화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읽었던, 경험했던 그리고 느꼈던 감각과 감정은 내 글에 고스란히 풀어져 종이 위에 안착하기 시작했다. 어떤 면에서 는 심리상담가와의 상담이 7월에 끝나고 나서 8월부터는 시를 쓰면서 내가 나와의 심리상담을 쭉 해 왔던 느낌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나 자신에게 더 솔직하고, 타인에게 나의 얘기를 더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나만 혼자 생각하고 있던 생각과 말,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언어들이 하나하나의 시와 에세이로 풀어져 나오면서, 상업 영화가 원하는 캐릭터와 플롯, 결말들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누군가와 나눠보자, 그게 100만 관객이 아니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내 손으로 만들어 내가 사용한다’라는 믿음은 우리의 주도권을 우리 자신에게 환원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키운 채소가 생긴 건 못났지만 더 맛있고 나에게 기쁨을 주듯이, 내가 무엇을 만들어 내가 이용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눈 다는 것에는 커다란 긍정의 힘과 함께 연대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한국 사람들은 항상 술을 빚어왔다. 하지만 1916년 일제강점기, 우리의 가정에서 제조하는 술이 불법으로 간주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술은 단속의 대상이 되었다. 일제가 양조장 통폐합과 대형화를 통해 안정적인 주세징수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하면서, 집과 주막에서 술을 빚는 모습은 사라져 갔고, 2021년 우리에게 술은 마트와 술집에서 사 먹는 것이 되어 버렸다. 몇 년 전부터 좋은 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가 마실 술과 맛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 차례이다!
이 모든 장대한 꿈을 시작하려면 어떻게 와인을 만드는지 에 대한 지식을 터득해야 할 터. ‘한국와인 & 양조과학’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350페이지의 양조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 든 생각은 ‘아, 이거 10년짜리구나!’였다. 영화를 공부하고 만들고 장편영화로 데뷔하겠다고 시작한 지도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나는 아직도 영화라는 매체를 마스터하지 못했는데. ‘양조 역시 이 영역에 통달하려면 최소 10년은 걸리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내가 또 대책 없이 무턱대고 접근했나 하고 생각해 보았다.
집 근처 영등포문화원 천연발효 ‘술과 식초’ 수업을 들으며 양조의 비법을 배워볼 계획이었지만, 수업 일정은 코로나로 연기되고 또 연기되어 어쩔 수 없이 슬기로운 집콕 학습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청귤청에 대한 레시피는 흔히 찾을 수 있었지만, 청귤와인에 대한 레시피는 양조과학을 배워가면서 나 스스로 만들어가야 했다. 제철이기도 했고, 와인 중의 대표격, 포도와인을 양조 연습 삼아 만들어 보기로 했다.
포도와인 만들기 일지
8월 4일 수요일
적포도 두 송이(1.2kg)를 씻고 물기를 제거했다. 술을 빚을 때 물을 멀리하는 것을 권한다. 물 안에 있는 잡균이 술 안에서 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도를 으깨고 밀봉되는 두꺼운 지퍼백 봉지에 담았다. 집에 있는 유리병, 플라스틱병, 스테인리스 스틸병에 보관해도 되지만, 주기적으로 섞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숟가락이나 국자를 매번 소독하는 것보다 봉지에 넣어 보관하며 흔들어 주는 방법을 택했다.
포도껍질에 야생효모가 있기 때문에 포도주용 상업 효모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 발효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식용으로 시판되는 포도는 당도가 10브릭스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양조의 적정 당도인 23브릭스를 맞추기 위해서는 설탕(200g)을 섞어야 했다. 씨와 껍질에서 타닌 등 좋은 성분이 나오기 때문에 같이 넣었다.
8월 5일 목요일 ~ 8월 25일 수요일
1차 발효하는 동안 포도 껍질이 위로 뜨는데, 섞어주지 않으 면 흰곰팡이가 생기게 되므로 매일 두 번씩 봉지를 흔들어 주었다. 야생효모가 당분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효모 방귀)를 발생하므로 가스를 주기적으로 빼주었다.
8월 16일 월요일 ~ 8월 24일 화요일
청귤이 잘 익고 있나 제주도를 방문했는데, 이산화탄소를 주기적으로 빼줘야 해서 포도와인도 비행기 타고 제주도까지 동행했다. 비행기 안에서 봉지가 혹시 빵빵해져 폭발할까 봐 슬쩍 가방을 열어보았다.
8월 26일 목요일
1차 발효가 끝난 포도를 망에 걸러 병에 옮겼다. 포도 1.2kg를 이용해서 1리터의 와인이 나왔다. 이제부터 2차 발효가 시작되는데 여전히 가스가 조금씩 나와서 병뚜껑을 살짝 닫아 두었다.
9월 14일 화요일
추석 연휴, 포도와인을 들고 다시 제주로 향했다. 물잔이든 술잔이든 잔만 보이면 모두와 건배하는 2살짜리 조카 윤이가 모든 가족과 차례대로 건배를 마친 후, 가족 모두 와인 한 잔씩 마셔 보았다. 아버지는 ‘정은이가 처음 만든 포도주!’하며 건배하셨다. 색깔도 시중의 포도와인과 비슷했다. 첫맛은 와인의 맛이 어설프게 났는데, 바로 와인이 정방폭포에서 낙하하듯 그다음의 맛이 존재하지 않았다. 맛의 절벽이랄까. 다들 입안 가득 칭찬을 머금었다가 도로 삼키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까마득한 50년 전 고모 댁에서 만들어 마셨던 포도와인의 맛이 난다고 하시며 조금 더 놔두면 맛있어 지겠다고 하셨다. 윤이 포함 가족 전원, 와인을 더 숙성시켜야겠다는 의견에 여전히 냉장고에서 된장과 간장, 발사믹 식초와 함께 저온숙성 중이다!
11월 7일 일요일
소리 소문 없이 냉장고에서 2개월 동안 저온숙성 중인 포도 와인을 오랜만에 개봉하고 맛을 보았다. 살짝 놀랐다. 와인잔 안에 살포시 담긴 와인의 빛깔은 노란빛을 머금은 은은한 자주색을 띄고 있었다. 로제와인처럼 인위적인 핑크빛 로맨스가 아니라 성숙한 여인네의 자신감 넘치는 스칼렛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와인은 투명한 띠를 머금은 듯 와인잔을 상쾌하게 감싸 안고 있었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시자, 초콜렛과 말린 자두맛이 처음 나를 반겼고, 조금의 향미가 달콤함을 지루하지 않게 하다가, 알코올이 혀와 코를 맴돌다 입술에 따뜻한 여운을 남긴 채 사라져 갔다. 나는 나의 와인과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 3개월 만의 첫 키스였다. 첫 키스의 여운이 아직도 입안에서 설렌다.
양조의 비밀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이게 참 보통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한 병의 와인 속에는 과일이 자란 지방 특유의 자연의 조화와 더불어 와인을 만든 사람의 철학과 경험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의 지중해성기후에서 자라 태양 듬뿍 머금은 당도 23브릭스의 와인 제조용 포도와 우리나라의 온대기후에서 자란 포도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왜 한국의 포도와인의 맛이 떨어지는지, 왜 당도가 10브릭스 정도 밖에 안 되는 귤과 청귤의 와인 제조가 활성화되지 않았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와인을 만드는 사람의 경험과 지식,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만들어가며 와인의 맛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 또한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림 그리기 강좌의 한 강사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용기를 가지고 자기중심적으로 자신 앞의 모든 상황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눈치를 볼 것 인가의 문제라고 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고도 했다. 그림은 그리면 그려진다고도 했다.
시판 포도로 테스트 와인을 만들어 가며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은 나더러 ‘반려술’을 가지고 다닌다며 놀려 댔다. 내가 가는 곳마다 반려술이 따라다녔고, 반려견 자랑하듯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집에 오면 잘 있나 늘 살펴보고, 나의 살아있는 그리고 날마다 숙성하는 반려술은 나에게 행복을 주었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추석 연휴에 포도와인을 처음 개봉했을 때, ‘내가 혹시 가족을 대량살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 반, 우려 반의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만든 포도주를 마시며, 어릴 적 까마득한 1960년대의 고모 댁 포도주를 회상해 내시기도 하셨고, 어머니도 할머니가 빚었던 포도주 담그는 방법을 나에게 얘기해주시며, 할머니는 오랜만에 다시 우리 식탁에 함께 하셨다.
글 최정은 @greentangerine_jeju
그림 윤미선 @studio_misun
이 글은 2021 서울예술교육센터 감정서가 출판워크숍 <감정출판>의 참여를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https://www.sfac.or.kr/site/SFAC_KOR/08/10827010000002020102202.jsp
이 글은 2021 서울문화재단 일상문화[BLANK] 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