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을의 해님
영등포문화원에서 ‘술과 식초’ 수업을 재개하게 되었다며 문자를 보내왔다. 술을 혼자 끙끙 담근 지 9일이 지나고 난 후였다. 수업을 들으며 슬기로운 집콕 학습법을 복습해 보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갈 차례였다. 문화원 수업은 곡물로 빚는 전통주 위주여서, 과실로 빚는 술만 만들어봤던 나에게 더 큰 ‘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었다.
곡물(전분/다당류) + 효소(누룩)
=
당(포도당/단당류) + 효모균(누룩/효모)
=
알코올(술) + 이산화탄소(방귀) + 칼로리(병이 따뜻해짐)
과실(단당류)로 담그는 포도와인이나 청귤와인의 경우, 첫 번째 과정 없이 바로 발효 과정이 진행되지만, 쌀과 보리 등 곡물로 담그는 술은 한 차례 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곡물이 누룩에 있는 효소를 만나 단당류로 분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밥을 입안에서 씹었을 때 침에 있는 효소가 전분을 분해하면서 당을 만들게 되는데, 밥을 씹으면 씹을수록 달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치이다. 효소와 효모, 당, 물은 모두 운동성이 없기 때문에 서로 자주 만나서 발효가 잘 진행되라고 나와 윤이는 그렇게 술을 젓고 봉지를 흔들어 주었던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큰 의미에서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효모균이 원하는 환경인 온도, 양분, 습도를 만들어 주는 것과 위생, 소독, 오염되지 않게 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와인에 사용할 숟가락, 국자, 용기는 기본적으로 뜨거운 김으로 열탕 소독을 4~5분 하거나 자외선 소독, 알코올 소독하는 것을 권장한다.
청귤와인을 9월 19일에 담갔는데 포도와인보다 워낙 발효가 빨리 진행되어서 10월 12일에 술을 내리기로 했다. 집에 있는 온갖 국자와 통, 망이 총동원되어 나의 글방은 술방이 되어 술 냄새가 진동하였다. 얇은 면천으로 술을 짜는데 한 방울 한 방울이 아까워 엉덩이가 으스러질 때까지 장장 4시간에 걸쳐 모든 술을 걸러 다른 병에 옮겼다. 이제 1차 발효가 끝났고 병 안에서 2차 발효가 시작되었다. 포도와인 때처럼 3일에 한 번 정도는 병을 흔들어 주고 병뚜껑을 살짝 열어두었다.
술을 잘 만들고 싶었다
1차 발효는 이미 다 끝난 것 같은데
이게 썩은 건지 뭔지
도통 알 수 없는 미지의 혼돈
윤이도 고모를 돕고 싶었다
1차 발효는 이미 다 끝난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스티커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막연한 무질서
윤이야!
술 효모 표시 스티커를 이리저리 섞어버린
윤이에게 소리친 나
깜짝 놀라 다른 방으로 가버리는 윤이
미안해 윤이야 뽀뽀 뽀뽀
입맞춤하는 우리 둘
그때 불현듯 나에게 소리치던
그래서 많이 서운했던
30년 전의 할머니를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포도와인과는 다르게 원액이 워낙 질퍽해서, 보기에도 만들기에도 영 번잡한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당 성분이 있는 모든 것으로 술을 만들 수 있다고 하셔서, 그럼 청귤청으로도 술을 만들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당연히 된다고 하셨다.
그 반가운 소식에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엄마에게 전화했다. 청귤을 내가 따고 싶을 때 따서 청을 만들어 보관하고, 술을 만들어야 할 시기에 맞춰 청을 꺼내서 그때그때 술을 담가도 되는 것이었다. 엄마도 그게 더 나은 것 같다며, 효모균이 죽지 않게 청의 당도를 30브릭스 넘지 않게만 맞출 수 있다면 그 방법이 청귤와인을 지속해서 그리고 대량으로 만들 방법 같다고 하셨다. 9월 중순에만 만들 수 있는 와인이 아니라 일 년 내내 원재료 공급이 가능한 양조장이 되는 것이다!
남대문 그릇 도매상가에 가서 작은 와인병을 골랐다. 자외선 차단을 위해 갈색 병이 좋겠지만 여름 태양의 와인 빛깔을 처음 접하게 될 사람들을 위해 투명한 병으로 골랐다. 병을 팔팔 끓는 증기에 소독하였다. 2차 숙성이 끝난 청귤와인을 깔때기를 이용해 살살 술술 새로 사 온 병에 병입하였다. 일러스트레이터와 작업한 로고를 병 위에 살포시 붙여주었다. 그동안 생수통에 보관되어 있던 와인에게 뭔가 정장 한 벌씩 선물한 느낌이었다.
옷장 안에서 예쁜 옷 입고 숙성하고 있는 와인을 볼 때면, 과수원 구석에서 썩어 사라졌을 청귤이 보이기도 하고 나의 모습도 보인다. 우리 과수원은 엄마가 제주도에서 서울 올라와 미국 항공사 부품회사 반도체 검사원 일을 하면서 차곡차곡 모은 돈과 결혼 후 아버지의 월급을 더해 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적에 산 땅이다. 태어나 보니 집은 연세 내는 곳에 살면서 과수원은 가지고 있었다. 얼굴은 뵌 적은 없지만 그리운 증조할머니와 할머니가 묻혀 계시기도 하고, 내가 많이 사랑했던 강아지 앤드류가 묻혀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무렵 부모님이 처음으로 귤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한 살짜리 귤나무들을 사다가 심으셨다. 워낙 나무 사이가 듬성듬성해서 나와 오빠는 나무 사이를 축구공을 차며 놀곤 했다. 지금은 나보다 두 배 세 배나 키가 커서 나무의 머리를 건드릴 수도 없는 성목이지만 과수원 귤나무들은 나와 같이 자란 내 평생 친구들이다. 그 녀석들이 그동안 말없이 내어준 귤은 나의 밥 한끼가 되었고 나의 대학 등록금이 되었다.
그렇게 아름답고 고마운 녀석들이 매번 우리에게 내어주던 청귤과 귤을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버리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고 매번 희망을 품고 시나리오 한 씬 한 씬 적어 내려갔던 나를 아직은 버리는 것이 죄스러웠다. 비록 아직 작고 엉성하고 울퉁불퉁하고 영화투자사들의 마음을 끌지 못하는 시나리오를 쓰는 나이지만, 언젠가는 저 청귤와인처럼 완성되어 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본다. 나의 ‘만들기’ 근육을 더 강하게 다져보겠노라고, 그림은 그리면 그려지더라고 더 큰 다짐을 해 본다.
내 ‘빨간섬’ 시나리오도 그렇고 나의 청귤와인 ‘Greentangerine’도 이제 2~3년 동안은 레시피를 여러 차례 다듬고 실험하는 시기가 될 걸로 생각하고 있다. 몇 년 후, 청귤와인 ‘Greentangerine’이 제주의 태양이 입안에서 살살 녹아드는 풍미를 선사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직업도 바꿔보지 않을까 한다, 녹색직업!
글 최정은 @greentangerine_jeju
그림 윤미선 @studio_misun
이 글은 2021 서울예술교육센터 감정서가 출판워크숍 <감정출판>의 참여를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https://www.sfac.or.kr/site/SFAC_KOR/08/10827010000002020102202.jsp
이 글은 2021 서울문화재단 일상문화[BLANK] 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