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렁이가 엄마가 되기까지

현명한 엄마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by 녹차맛아이스크림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시도 때도 없이 학교로 부모님을 호출했다. 준비물을 빼먹는 날들이 많았기에. 언니는 그러지 않았으나 나는 달랐다. 아빠는 개인택시를 하셨기에 움직임이 유동적이었고, 그래서 덜렁대는 딸내미를 뒷받침해주실 수 있었다. 그렇게 부모님을 귀찮게 하던 나는 커서도 준비성 부족이 나아지진 않았다. 엄마는 항상 '미리미리'하라고 가르치셨지만, 우리 집에서 나만 이단아였던 걸까?

덤벙거림은 대학생 첫 번째 겨울방학에 떠난 이탈리아 여행 때 절정을 찍는다. 여권 영문이름과 다르게 항공권을 예약해 버리고, 친구의 지적으로 뒤늦게 알게 되는 일이 있었다. 한 자리가 있어야 취소 후 다시 예약을 할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로 인해 여행에 못 갈 위기에 쳐했었다. 다행히 기다림 끝에 변경이 가능했지만 항공비 전액을 다시 입금을 해야 했고, 기존 예약분의 취소까지는 최대 몇 주가 걸릴 수 있다고 했다. 그때 엄마와 은행에 가서 부모님 돈으로 항공비를 입금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너무 여러모로 마음고생을 했고, 엄마를 힘들게 했다. 떠나는 날까지 늦어서 뚝딱거렸고, 미리 구매해 둔 리무진 버스 티켓까지 집에 두고 오는 바람에 버스시간까지 매우 촉박했다. 아빠가 새벽길을 질주해 준 덕에 무사히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를 배웅하고 돌아가는 아빠의 모습, 그때 부모님께 무한히 죄송했던 나를 기억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부모님의 어떤 것들을 갉아먹으며 자라난 것만 같다.

그때의 경험이 나를 자라게 한 줄 알았으나, 준비성 부족은 아직 내게 남아 있는 불청객이다.

아이의 2개월 접종을 위해 병원에 가는 날, 딤플 초음파도 함께 하기로 했고 준비물 중에는 분유도 있었다. 그러나 분유포트의 물이 동나서 대충 수유 시간이 맞겠지 싶어 분유 없이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서야 집에 두고 온 아기수첩이 떠올랐다. '역시 나 자신, 실망시키지 않는군.' 헛헛한 웃음이 났다. 병원에 있는 내내 늦게 끝나서 수유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어떡하지, 배고프면 아이가 많이 울텐데, 역시 분유라도 챙겨 와서 정수기 물이라도 타거 먹였어야 했을까,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미리 준비했다면 불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시간 내에 진료와 접종이 끝났고, 아이는 고맙게도 집 가는 길 내내 곤히 잠들어 주었다.

결론적으로는 상황이 운 좋게 돌아갔으나, 미리 준비했다면 그 시간 내내 마음이 편안했을 것이다. 엄마가 준비물을 챙기지 않으면 아이가 고생한다. 그 옛날 덤벙거리는 나는 엄마가 되어서도 덜렁이고 있다. 이제 다시 엄마가 강조했던 '미리미리'를 되새겨보며 현명한 엄마로 한 걸음을 내디뎌 보고 싶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준비하는 습관의 중요성에 대해 알려줄 것이다. 맞벌이 중이기에 준비물을 가져다줄 수 없기에 강하게 키워야 한다. 어린 날의 나를 돌아보며, 반성하며, 앞으로 또 한걸음 한걸음 씩씩하게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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