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한 형사님, 편지를 한 통 보내주실 수 있나요?
요즘 임신 때 태교로 읽어줬던 이야기 책을 아이에게 다시 읽어주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이야기 속 주인공을 통해 '간절함을 아는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좀 더 간절했다면 어땠을까. 내 인생이, 엄마의 인생이 달랐을까.
만약 시간을 거슬러 다시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아니면 드라마 시그널처럼 그 시절의 내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꼭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엄마와 함께하는 너의 미래를 간절히 원해봐."
엄마는 산으로 운동을 한창 다니셨던 때도 있었지만, 헬스장이나 요가원 같이 돈 드는 데는 다니지 않았다. 먹는 것도 자신에게는 대충대충. 아마 빨리 먹고 다른 일을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무척 성실하셨다. 아마 엄마의 유일한 바람은 언니와 내가 잘 자라는 것이었을 거다. '잘 자라는 것'의 정의가 여럿일 수 있겠지만, 지금 건강히 평범하게 잘 살고 있으니 이건 엄마의 은덕이다. 그래도 조금 더 보태 내가 좀 더 공부를 잘해 더 좋은 대학과 더 좋은 직장을 가졌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어린 날의 내가 엄마에게 발칙한 딜을 했다면 어땠을까. 가령 내가 서울대학교에 갈 테니 '엄마는 술 같은 안 좋은 거 말고 몸에 좋은 것만 챙겨 먹기.' 이런 약속말이다. 내 유일한 소원이라고 강력하게 말했다면 어떻게든 성사되지 않았을까.
내 머리로 서울대에 갈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엄마의 건강이 더 유지돼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훨씬 늘어났을지도 모른다. 장기간의 프로젝트이니 끝까지 지켜봐 달라는 말로 중간중간 설득해 볼 수도 있었을 테지. 그리고 진짜 간절함이 있다면 그저 그런 머리로도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끝내 실패했더라도, 고군분투하는 자식을 보며 엄마도 '그래 자식 소원이라는데 들어주지.'라고 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어린 날의 나는 우리 가족의 행복이 영원할 줄 알았고, 철이 없었다. 그래서 남들처럼 대기업에 입사하면 잘 키워줘서 감사하다는 회사에서 보내주는 꽃바구니 같은 건 안겨드리지 못했다. 그래도 이제는 꽃바구니쯤은 얼마든지 사줄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취직해 돈도 모으고,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엄마가 흐뭇해하겠지.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엄마가 선물해 준 지금의 이 시간들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감사하며 의미 있게 사는 것, 아빠, 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가족의 소중함을 충만히 느끼는 것, 그것이 내가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지 않을까. 내 인생이 조금 더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내 자신을 더 돌보면서 말이다. 그 옛날 내가 엄마가 엄마 자신을 더 돌보길 바랐던 것처럼. 지금이라도 간절함을 갖고 매 순간을 소중하게 살자! 이게 앞으로 나의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