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집 아기를 부르며 우는 엄마가 돼서야 느끼는 것들
당연함에 대한 감사
엄마가 되어 보니 나의 수고스러움에 대해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하루 종일 했던 많은 일들, 아이를 보면서 했던 집안일들 등 "나 이렇게 많은 일을 했어. 나 이렇게 고생했어."라고 말하고 싶고, 수고했다는 말을 기대하게 된다. 임신과 출산이 여자의 몫인 걸 보면, 애초에 육아에 아빠보다 엄마의 역할이 더 큰 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당연히 그런 것이지만, 그럼에도 나의 수고를 알아주길 바란다. 스스로에 대한 인정도 중요하지만, 이를 자연스레 외부에서도 바라게 된다.
우리는 이미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도 잊을 뿐이다. 청소를 매일 했을 땐 몰랐겠지만, 안 했을 때 먼지와 쓰레기가 눈에 띄겠지. 건강한 몸이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을 땐 몰랐겠지만, 다치거나 아팠을 때 그 소중함을 알게 되겠지. 태초부터 갖고 있었으나, 잃어보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어리석음.
나 또한 그랬다. 엄마가 아프시고 난 후, 엄마가 돌아가신 후 가족의 소중함은 가슴 깊이 새겨졌다. '언제까지나 건강하겠지'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만큼 가족의 존재는 당연히 내 옆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뒤늦은 연애를 할 때는, 전화가 와서 핸드폰을 꺼내곤, 발신자가 남자친구가 아닌 엄마였을 때 실망했던 부끄러운 지난날이 생각난다. 그 어리석었던 날들은 이제 후회로만 가득할 뿐이다. 그래서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아빠와 언니와 카페에서 테이크아웃을 해 외할머니 댁에 가며 행복과 소중함을 느꼈던 그날의 공기와 시간을 기억한다. 그렇게 엄마의 부재는 나에게 당연한 것에 대한 감사와 일상,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했다.
「섬집 아기」가 이렇게 슬픈 노래였다니
요새 수면 교육을 하며 아기에게 자기 전 자장가를 불러준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다는, 어릴 적부터 듣고 자라 가사가 익숙한 덕에 몇 번 「섬집 아기」를 불러줬다. 그런데 2절을 부를 때면 꼭 눈물이 차오르고, 목이 매여와 이제는 부르기를 포기해 버렸다. 혼자 남아 집을 보는 아기가 걱정되어 다 못 찬 굴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모랫길을 달려오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면, 우리 엄마의 모습이 생각나버려서 말이다.
나는 왜 엄마의 존재와 자식에 대한 엄마의 사랑을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을까. 나를 낳아줘서 고맙다고, 나를 사랑해 줘서, 나를 위해 희생해 줘서 고맙다고 왜 진작 말하지 못했을까.
자장가를 부르며 울어버리는 엄마가 되고 나서야, 나의 엄마에게 뒤늦게나마 마음을 전하고 싶다. 사랑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어렸던 내가 이제는 엄마가 되었다고, 엄마가 이제껏 내게 보내준 사랑에 너무 큰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