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으로 손세탁하십시오」 이불의 tag에 쓰여 있지만, ‘손세탁할쏘냐’라며 ‘단독’이라는 말만 지켜 세탁기로 직행시킨다. 그나마 안내문의 50%나 지켜서, 무려 이불빨래라는 걸 하는 자신을 대견해하며 말이다. 다행히 문제없이 뽀송뽀송하고 부들부들한 원단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렇게 큰 문제가 없으면 쉽게 쉽게 가자 주의이다. 물론 일할 때는 꼼꼼하게 하려고 하고 있지만 일상에는 그런 마음가짐이 쉽지 않다. 이런 귀차니즘은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는 나쁜 습관을 만들고, 진득함의 부재로도 이어진다. 일상의 곳곳에서 역효과가 나타나는 순간이 있다.
ep01 가지 사건
가지무침을 만드는 데 한번 데쳐서 뜨거운 가지를 식힌 후에 찢어서 무치는 방법으로 도전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진득한 기다림을 모르는 나는 대충 ‘이 정도면 식었겠지’하며, 가지를 찢다가 손을 데고 말았다. ‘괜찮겠지’라는 순간의 안일함으로 인해 손을 데어버렸고, 그 후유증은 꽤 오래갔다. (feat. 괜찮겠지? 아니 안 괜찮아.)
ep02 바지 태움 사건
키가 작은 편이 나는 대체로 바지를 사면 기장을 줄이고, 바지에 따라 허리 사이즈도 줄이기도 한다. 지난해 봄맞이용으로 산뜻한 베이지색 바지를 구매할 때, 체형에 맞춰 허리와 길이를 줄여 두었다. 아침 출근 전에 급하게 다림질을 한다고 열을 최대로 올렸다가 바지에 찝힘 현상이 발생하고 말았다. 수선의 품과 비용을 들였음에도 순간의 얄팍한 마음으로 소중한 것을 날려먹고야 말았다. (feat. 다리미에 면/리넨/울 같은 표기가 그냥 있는 게 아니잖아.)
ep03 새 신발의 역습 사건
새 신발을 살 때는 신발의 가격과 상관없이 적응기간이 필요한 타입이다. 새로 산 플랫을 신고, 여느 날처럼 서둘러 외출하던 날이었다. 시간이 없었기에 지하철역에서 스타킹을 구매할 계획으로, 대일밴드만 가방에 욱여넣고 급하게 집을 나섰다. 그러나 내 생각처럼 새 신발은 무르지 않았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10분 동안 이미 발에 자극이 오기 시작했고, 지하철역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뒤꿈치가 까져버리고 말았다. 이미 한번 까져버린 이후에는 한걸음을 뗄 때마다 고통이 동반됐다. 5분만 일찍 일어났다면, 스타킹을 미리 구매했다면 겪지 않아도 됐을 고통이었다. 조금만 성실해지면, 인생이 편해질 수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인생의 진리를 다시 한번 온몸으로 체감한 순간이었다.
미리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는 걸 실천하는 게 왜 이리도 어렵기만 한지.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 더 이상 더 많이 잃어버리기 전에 깨달은 것들을 곱씹고 후회를 줄여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