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때가 찾아오지. 어떤 문제를 봐도 가슴이 뛰지 않고 즐겁지 않고, 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그런 때가. 모든 수학자는 그런 시간을 겪는다. 그런 시간을 겪지 않는 수학자는 다음 문제를 풀 수가 없어.
-드라마 멜랑꼴리아中-
극 중 마음의 상처를 입고 더 이상 수학 문제를 풀지 않는다는 딸 윤수(임수정 님)에게 아버지가 하는 말이다. 담담하게 건넨 아버지의 조언 덕에 윤수의 눈물에 공감이 됐던 장면이었다.
과정의 중요성과 그 과정을 제대로 견디고 이겨내는 일, 힘든 시간이라도 결코 헛되지는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비슷한 상황은 꼭 ‘수학’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여러 순간에도 찾아오는 것 같다.
나의 경우 힘든 시간을 이겨낸다는 거창함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름 손에 땀이 나고, 혼자 고군분투했던 며칠이 있었다. 최근 일의 준비, 마무리 시간 분배가 마음처럼 되지 않아 혼자 애태우는 기간이 많아졌다. 바쁜 기간의 연속이라 지난주 수요일 여행을 취소하고, 다시 약속을 잡았던 터였다. 즉 취소하기 어렵고, 꼭 지키고 싶은 약속이었다는 것이다. 다음날 연차를 위해 늦게까지 야근을 할 요량이었다. 결재를 받아두고, 혼자 천천히 야근하며 일처리를 할 계획은 아주 큰 둔각으로 빗나갔다.
생각보다 품의 준비 시간이 오래 걸렸고, 결국 7시가 다되어서야 결재가 완결되었다. 6시 퇴근 전에 결재할 수 있도록 미리 상신하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 전전긍긍하며, 마치 면접을 보는 듯한 마음의 쿵쾅거림으로 손에 땀을 쥐며 일했다. 다음날 큰 행사를 앞두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나라를 구하는 일도 아닌데, 어떻게든 될 텐데 왜 그리도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마음에 폭풍우를 일으켰는지 모르겠다. 혼자 마음속으로 그 난리를 쳤는데, 밤 11시에 오류를 발견하고 말았다. 결국 새벽 12시 30분 퇴근으로 일단락했지만 다다음날 연차를 취소하고,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 오류를 수정하고, 재품의를 해야 했기에...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새벽에 택시가 잡히지 않을 때, 야근 후 조금 더 남아 기다려준 동료가 선뜻 집까지 바래다준 것(그녀의 집은 회사 근처였으므로 매우 고마운 선의였다), 최종 안내 전에 오류를 발견한 것, 다른 팀원들도 이미 했던 오류이기에 지속되지 않도록 끊어낸 것이었다.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데 의의를 두자고 생각했다. 오늘 한 일을 똑같이 다시 해야 하지만, 깨달음을 얻었으니 아예 시간낭비는 아니었던 것이다. 과정이 중요한 순간도 인생에는 꽤 있으니까.
‘그래도’를 외칠 일은 다음날로도 이어졌다. 새벽 퇴근에다 마음이 많이 털린 탓인지 20분 전에 역에 도착해서 기차를 기다렸음에도, 기차를 놓친 후에야 잘못된 곳에서 기다렸다는 걸 알았다. 어제 일의 연장선으로 팀원과 연락을 하다가 플랫폼 정보를 놓친 것이다. 가려는 목적지(원주)가 쓰여있어서 안심했는데, 다른 인근 역(만종역)으로 예매한 걸 잊고 방심했다. 기차가 떠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려야 실수의 끈을 끊을 수 있다’고 되뇌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40분 후 서원주역으로 가는 기차를 예매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항상 나를 이해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어 위안이 됐다. 친구와는 예정보다 1시간 정도 늦게 만났고, 조금 늦었지만 계획대로 원주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여행 후, 다음날 출근해서 오류 수정 후, 최종 안내도 마쳤다. 과정이 조금 많이 힘들었지만, 결과는 해피엔딩이라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