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침서가 Oct 27. 2022

소설의 충격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읽고

내가 이 책을 왜 오랫동안 묵혔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내가 원망스러웠던 작품이다. 소설의 끝판 같은 느낌이랄까, 소설로 부릴 수 있는 기교, 그러니까 흥미, 자극, 충격, 반전, 이 모든 것들은 손에서 책을 놓는 것도, 생각하는 것을 멈추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염세적 시선, 혐오, 전쟁의 참혹함 또 외로움과 같은 불온한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1부는 전쟁으로 할머니 집에 맡겨진 쌍둥이 형제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쌍둥이가 직접 말하듯이 생각이나 주관의 뜻이 포함된 말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는 사실 그 자체만 기록하듯이 짧은 문장으로 툭툭 나아가는데 충격적인 모습까지도 가감 없이, 꾸밈없이 툭툭 던지기 때문에, 충격은 더 충격적으로, 혐오스러운 부분마저 더 혐오스럽게 느껴지도록 한다. 훨씬 더 날것으로 이미지화되어버린달까. 그래서 쌍둥이의 영악함이 더 놀랍게 느껴졌고 무감각하게 이뤄지는 살인도 이상한 감각을 느끼게 했다. 그동안 범죄물을 읽을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이다. 쌍둥이는 곧 하나다.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설사 다른 행동과 말을 하더라도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절대 구분 짓지 않는다. 할머니, 언청이 소녀, 목사, 목사의 하녀, 외국인 장교까지 어느 하나 입체적이지 않은 인물이 없고 독자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인간상들이다. 굳이 쌍둥이를 내세우면서도 구분 짓지 않듯이 다른 캐릭터들도 악인인지 선인인지 굳이 구분하지 않는 것이 재밌다. 1부의 마지막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국경을 넘는 방식도 그렇지만 쌍둥이가 드디어 분리된 것이다.


2부는 1부와 문체도 흐름도 전혀 다른 분위기로 흘러간다. 상대적으로 따뜻하다는 느낌까지 받는다. 홀로 남은 루카스의 외로움이 너무 짙게 느껴졌다. 야스민과 그녀가 근친으로 낳은 꼽추 아들 마티아스를 온정으로 품고 또 클라라라는 여자를 사랑하고 페테르나 서점의 빅토르와의 관계가 펼쳐진다. 1부의 캐릭터들과 마찬가지로 2부에서 주로 다뤄지는 인물들도 하나같이 입체적이다. 각 캐릭터만으로도 독립적인 이야기가 가능할 정도로 풍부한 캐릭터들이라는 게 놀랍다. 특히 빅토르 말이다. 빅토르의 이야기도, 마티아스의 결말도 충격적이었다. 1부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뒤흔들어버릴 3부를 예고하며 2부를 끝맺는다. 뭔데?! 뭐야?! 를 몇 번이나 하는 건지 모르겠다.


3부는 사람들이 혼란스럽다고 많이들 얘기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저자가 지금까지 열심히 따라온 독자들을 근간부터 완전히 뒤흔들기 위해 1, 2부를 통해 열심히 빌드업 해왔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근데 이게 처음부터 계획하고 쓴 이야기가 아니므로 이 말은 틀린 말이 되겠다. 내가 읽은 것에서 어느 부분이 진실이고 어디가 거짓인지, 어떻게 재조립해야 하는지 열심히 머리를 돌리며 읽지 않으면 낙오할 것임을 알려주며 비웃는 듯도 하다. 난 솔직히 2부에서 쌍둥이는 사실 쌍둥이가 아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전쟁으로 인한 이중인격의 발현이랄까? 주변 인물들에게는 떠나버린 쌍둥이에 대한 인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조금은 맞고 조금은 틀리지만 진짜 오래간만에 머리를 팽팽 굴리며 읽었다. 다 읽고 나니 루카스가 왜 아무 관계도 없는 야스민과 마티아스를 그렇게 품었는지도 이해가 갈 듯하다. 3부에 대해선 호불호가 워낙 많다. 3부로 인해서 1, 2부에 대한 이야기의 힘이 약화했다고 보는 시선도 있더라. 그 말도 나는 맞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진실이라 읽었던 것이 허구가 되어버릴 때의 허무함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푹 빠져 읽은 만큼 일종의 배신감이랄까, 애초에 소설인데도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모든 것을 뒤틀어 버리는 3부로 인해 또 다른 재미가 생겼다고도 생각한다. 이 책이 한 번에 쓰였다고 해도 놀라울 텐데 후속에 대한 계획 없이 내놓은 세 가지 이야기가 이렇게 묶일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이 책은 절대 곱지 않다. 전달하는 방식도 이야기 자체도 어딘가 비틀어진 인물들도 결말마저도 곱지 않다. 그런데 왜 이렇게 좋을까. 난 이 작품을 영원히 충격으로 기억할 것 같다.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다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문맹은 사뒀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라고 해서. 누가 소설책 추천해달라고 하면 앞으로 이 책 추천해 줘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적절한 거리를 두고 알맞게 그리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