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은의 <나는 지하철입니다>를 읽고
나는 오늘도 달립니다.
매일 같은 시간
매일 같은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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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선가 와서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을 싣고
한강을 두 번 건너며 땅 위와 아래를 오르내립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 길 마디마디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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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하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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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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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러프한 듯하면서도 인물 하나하나가 섬세히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아예 정밀 소묘를 하면 모를까 단순한 듯한 터치로 디테일이 살아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는데, 그만큼 대상의 움직임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것일 테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우리 학원에서 가장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 효은이. 그때 효은이는 수채화를, 나는 석고 소묘를 하느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는데도 어쩐지 효은이 그림만은 기억난다. 그 효은이는 이런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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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타고 다니는 지하철. 서울에 살 때 나는 참 적응이 안 됐다. 회사에서 1분 거리에 집이 있었고 일로 이동을 할 때도 회사 차로 이동했기 때문에 버스는 거의 이용하지 않았고 지하철도 1호선을 주로 이용했다. 그것도 명절에 집에 간다고 서울역을 가기 위해서였으니 뭐, 거의 연례행사 수준이었다. 같은 호선인데 인천행, 천안행, 신창행 이 있다는 사실에 몹시 당황했던 기억도 있다. 딱 한 번 친구네 간다고 몇 호선이었던가, 퇴근길 지옥철을 경험하고서 (내가 무지했다, 알았다면 나 따위? 가 그 시간에 나갈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멀미까지 하고 녹초가 되어 친구 집에서 요양의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건대, 무엇이든 절대 장담하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장담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매일 그 지하철을 타고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서울 사람들은 위대하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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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따스한 시선을 따라가며, 나는 서울 지하철을 이런 시선으로 느껴볼 기회가 없었구나 싶었다. 서울에 더 오래 살았더라도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보려는 사람에게만 보일 것이고 느끼려는 사람에게만 느껴질 것이므로. 별책 스토리북의 캐릭터 별 이야기는 조금 더 뭉클했다.
나는 어느덧 어른이 되어 내 길을 찾아 걸었습니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못 본 척 지나치며 부지런히 걸어갔습니다. 그러다 문득 길 위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주름진 손을, 가지각색의 얼굴을, 다양한 표정의 발을 그림으로 담기 시작했습니다. (...) 길 위에서 보았던, 가까이 있지만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것들에 대해. | 작가 김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