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준의 <여름과 루비>를 읽고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유년이 시절이라는 것. 유년은 '시절(時節)'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 멈추거나 끝나지 않는다. 돌아온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 컸다고 착각하는 틈을 비집고 돌아와 현재를 헤집어놓는다. 사랑에, 이별에, 지속되는 모든 생활에, 지리멸렬과 환멸로 치환되는 그 모든 숨에 유년이 박혀 있다. 붉음과 빛남을 흉내 낸 인조보석처럼. 박혀 있다. 어른의 행동? 그건 유년의 그림자, 유년의 오장육부에 지나지 않는다. Ι p.80 『여름과 루비 中』
좋아하는 박연준 시인의 첫 소설이 출간되었다. 그 이유만으로 읽고 싶었다. 요즘엔 책을 느긋하게 읽을 시간이 부족해서 버릇인 '아껴 읽기'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 기간 동안 나는 여름과 루비의 유년 시절로 떠났고, 그것은 곧 나의 유년 시절이었다.
이야기는 여름이가 들려준다. 어린 여름이는 철없이 살아가는 아버지로 인해 주로 고모의 손에 자란다. 엄격한 고모나 아빠가 데려온 '새 엄마'로 인해 느끼는 감정들은 여름이를 몸만 어린아이인 채 어른이 된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별로 없는 부모를 가진 아이는 눈치가 빤하고 쓸데없이 일찍 철이 드는데 외부에서 봤을 때나 쓸데없지, 당사자에게는 생존과 직결된 능력이다. 감정적으로 기댈 곳이 없는 여름이 앞에 나타난 루비는 참 다르면서도 같은 존재였고 그래서 더없이 가깝기도, 부담스럽기도 한 존재다. 그런 존재와의 이별은 계속해서 붙잡아 잇고 싶기도 하지만 끊어지면 끊어지는 대로 그대로 둬버리고 싶기도 하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여름이의 이야기를 읽는 건지 내 이야기를 읽는 건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비슷한 부분이 많이 있었다. 아빠의 직업이나, 피아노 학원, 초경에 관한 경험들까지. 시인 박연준을 생각하면, 어쩌면 빤한 예상이지만 시가 소설이 된 느낌이었다. 글 속에 Ι 꼭지째로 따버리고 싶어 하는 자의 말투다 Ι (p.25)라는 표현이 있는데 폭력적이면서도 너무 새로워서 아름다웠다 하면 이상한가? 또 미옥을 형용사로만 이루어진 문장 같다고 표현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보다 딱 맞는 표현이 어딨을까.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유년의 기억이라는 것은 너무도 선명하고 날카롭게, 그 자체로 '나'라는 존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니 그렇다. 유년에 미처 준비도 없이 경험하게 되는 숱한 첫 경험들은 강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속절없이 앓는다. 낫기도 하지만 덧나기도 하고. 이 세상 모든 기억과 상처를 모아볼 때 비슷한 경험은 분명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기억은 나에게만큼은 고유한 것이라서 그만큼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어떤 기억은 처음 그대로 남아있지만 어떤 기억은 조금 달라지기도 했다. 그건 자라면서 새로이 깨닫거나 무뎌지고 단단해지면서 더 이상 상처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쨌든 그 모든 것들이 함께 나를 이루고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새삼 생각하게 된 거라고 할까. 지금의 나의 생각이나 행동이 정말로 내 유년의 그림자, 유년의 오장육부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하면 조금 선득하다.
나에게도 루비와 같은 존재가 있었다. 철없는 아빠 때문에 우리들은 공유하는 감정이 많았다. 지나치게 많아서 가끔은 가족보다 더 가까운 존재, 가끔은 나보다 더 괴로운 사람으로서 위안이 되는 존재였다. 서로에게 그런 존재였고 그래서 더 숨이 막혔다.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다 공유되는 감정이 그렇고, 그 감정이 즐거운 감정이 아니기에 그랬다. 우리는 분명 서로에게 힘이 되었지만 서로를 이해할수록, 서로에게 공감할수록 괴로운 사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린 만났다 이별했다 한다. 매일같이 붙어있다가도 절교한 것처럼 멀어진다. 여름과 루비처럼 이별이라는 성장을 이루는 사이가 아니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사이, 그 사이에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이고 지금 우리는 또 이별한 상태다. 언젠가 시간이 흐른 뒤 또 만날 게 분명한 나의 루비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조금 덜 힘들었으면 한다. 잘 살고 있었으면 한다. 다음에 만났을 땐 조금은 무딘 사람들이 되어있었으면 한다.
어릴 때는 세상이 한 장의 돗자리같이 보였다. 작은 바람에도 내가 앉은자리가 날아갈 것 같았다. p.261 <작가의 말>
1. 새 학기에 나눠주는 '가정환경 조사서'가 이해되지 않았던 사람, 여기 있어요. 지금 생각해도 열불 난다. 누군가에게는 그 자체가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지금 같으면 별 고민 없이 쓰고 싶은 대로 써버렸을 것 같은데 어릴 때는 그게 무슨 엄청난 조사라도 되는 줄 알았다...
2. 루비는 '삼익 피아노'가 좋다고 했지만 나는 맑고 고운 '영창 피아노' 파였다. 학원에서 중앙에 있는 영창 피아노를 차지하려고 노력했다. 사실은 소리보다는 건반이 좀 더 가벼워서 그랬다. 우리 학원 삼익 피아노는 건반이 너무 무거웠다. 그 당시에는.
3. 평론가님의 해설을 읽다 주눅이 들었다. 작가님 작품을 얼마나 파면 이렇게 쓸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