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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서가 Oct 27. 2022

불안한 믿음과 불편한 질문

한은형의 <레이디 맥도날드>를 읽고

그전까지 소설을 쓴다는 것은 즐겁고 흥분되는 일이었는데 이 소설을 쓰는 동안은 그렇지 못했다. '작가의 말'을 쓰고 있는 지금은 알겠다. 그건 내가 그토록 피하고 싶은 불안 속으로, 자청해서 걸어 들어가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p.325 작가의 말


레이디 맥도날드라고 하면 잘 몰라도 '맥도날드 할머니'라고 하면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텐데, 나 역시 방송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오래전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유튜브에서 영상을 다시 보기도 했다. 이 책은 그 '맥도날드 할머니'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방송에서 할머니와 나눈 내용들이 책 전반에 걸쳐 그대로 들어 있고 대신 할머니가 어떻게 해서 그런 인생을 살게 됐는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을까 와 같은 물음에 작가는 실제보다는 조금 더 우아한 시선으로 답하는 듯하다. 실제 영상을 보고 나니 그렇게 느껴졌다.


마이 시크릿.

더 이상 묻지 말아요, 노코멘트.


아마 방송을 본 사람이라면 알 텐데, 완벽한 트렌치코트 핏과 박식함, 유창한 영어 실력, 종이 가방에 가득 들어있는 영자신문, 호텔 레스토랑이 너무 익숙한 듯한 모습. 그녀의 태도를 가만히 지켜보면 '맥도날드 할머니'보다는 '레이디 맥도날드'가 확실히 더 어울리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더 살펴보면 몸 하나 뉠 곳 없이 스타벅스, 맥도날드, 교회 등을 돌아다니며 꾸벅꾸벅 앉아 조는 영락없는 노숙자인 것도 맞다. 한국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외무성에서 일했고 결혼은 한 적 없다. 그 시절 여성에게는 눈치는 좀 받았을지 몰라도 더없이 화려한 삶이었을 것이다. 당연한 듯 누렸던 삶이 퇴직으로 끝나버렸다. 이후 맞닥뜨린 노년의 새로운 삶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이 가장 빛났던 시절을 배회하며 지내고 있었다. 


이번에 방송을 찾아보면서 밑에 달린 지저분한 댓글을 보고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레이디의 인생을 보고 누군가는 허영이라고, 가당치도 않은 자존심이라고 했다. 어쩌면 맞는 말일지 몰라도 너무 지저분한 댓글이 많았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한 사람의 삶을 단정 지을 수 있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나는 솔직히 앞으로 레이디 맥도날드 같은 사람이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자신 있게 나는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소설이 나왔다는 걸 알았을 때 아마 작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서 쓰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제는 화려했던 시절처럼 살 수 없는 처지가 되었음에도 몸에 밴 태도와 삶의 방식을 버릴 수 없었던, 아니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게 맞는 것 같다. 많이 배웠고 일했고 그 시절 많은 여성들이 선택해야만 했던 길을 가지 않은 채 늙어간 여성, 노숙인이면서도 노숙자라는 단어를 입에 담고 싶지 않았던 사람, 스스로가 몰아간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에 사람들은 어쩌면 왠지 모를 화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또 작가는 누군가의 불행, 숨겨진 사연을 캐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한 방송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대중의 심리를 이용해 시청률을 챙기는 방송가의 행태들 말이다. 뒤표지에는 실제 방송 PD가 당시 생각했던 것들이 이 책에 다 담겨 있었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이제 할머니는 세상에 없다. 작가는 자신의 미래가 맥도날드 할머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하는 것, 또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을 참지 못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본 것 같았다. 마음이 무거웠다. 별거 아닌 사소한 부탁도 절대 하지 못하는 나는 과연 괜찮은 걸까, 그런 생각도 하면서 책을 덮고도 정리할 마음이 많았다. 책 속 김윤자가 민수경에게 건넨 블루베리 케이크는 내가 아는 가장 쓸쓸한 블루베리 케이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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