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읽고
그저 할머니에 대한 기록인 줄 알았다.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할머니를 추억하는 것뿐 아니라 할머니가 주신 사랑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기억해 내고 자신의 육아에도 적용해 본 부분이었다. 어렵기만 했던 딸과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기억 속 할머니의 사랑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시종일관 따뜻했다.
나의 할머니를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나에겐 할머니가 엄마였으므로 좋은 기억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작가와 꿀짱아의 관계처럼 지지고 볶아대며 살았다. 그렇다 보니 여러 복잡한 기억과 감정들이 뒤섞여있다. 독립 후 물리적 거리가 생겨서일까. 지금은 할머니도 한 인간으로 느껴진다. 모든 할머니가 동화 속의 아름답고 귀여운 할머니는 아니지 않은가.
우리 할머니는 은근히 욕을 잘하셨다. 평소에는 안 하시지만 해야 할 때 하는 정도. 음식도 잘하셨는데 손은 넉넉한 편이었지만 늘 없이 살아서 그런지 가족 외의 타인에겐 조금 인색한 편이다. 7남매를 낳았고 그중엔 밭일하는 중에 태어난 아이도 있다. 사실은 8남매였지만 하나를 잃었다고 했다. 속을 새카맣게 만드는 자식들은 주로 아들들이었고 딸들은 다 알아서 잘 컸는데 어쩔 수 없이 우리 할머니도 아들을 아끼는 옛날 할머니였다. 잊을만하면 툭툭 사고 치는 아들 때문에 늘 불안해하며 살았고 전전긍긍이 일상이었다. 사위들로 인해 좋은 시절도 있었으나 어쩐지 며느리와는 인연이 없다. 많이 가지진 못했지만 예쁜 걸 좋아해서 가진 것 안에서 한껏 꾸미셨다. 알러지로 고생하시면서도 항상 염색하셨고, 늘 화장하고 손톱도 꾸미셨다. 좋아하는 것에 있어서 꽤 까다로우셨다.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여자는 능력만 있으면 결혼 안 해도 된다."
어렸지만 할머니가 왜 그런 말씀을 하는지 알았다. 썩 행복해 보이지 않았으니까. 사이좋은 친구네 부모님은 그런 말씀은커녕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게 아이 낳고 사는 미래에 의심이 없다. 그것은 좀 충격이었다. 왜 우리 할머니는 어린 나를 붙잡고 그런 말씀을 하셔야만 했나. 어린 나에게도 그것은 좀 슬픈 일이었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서. 그 마음만은 이해가 가서 웃으면서 말했다.
"좋은 사람 만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도 되지만 이상한 남자 만날 바에 안 만나는 것이 낫다."
할머니는 실제로 이성 문제에 굉장히 예민하셨는데 작은 부적을 책가방에 넣기도 하셨고 남자들이 많은 번화가에 놀러 나가는 것도 싫어하셨으며 해만 지면 내가 어디 납치라도 된 듯이 심각하게 전화하셨다. 여름에는 해라도 길지, 겨울엔 5시면 해가 넘어가니 놀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도 전화 오는 것을 싫어한다. 가슴이 벌렁거린다.
독립한 후에는 할머니 생각을 많이 했다. 치약 하나, 비누 하나, 휴지 하나도 거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그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매일 몇 번씩 하는 중요한 일이지만 안 할 수 있다면 참 편하겠다 싶은 끼니 챙기기를 스스로 하다 보니 할머니는 이런 일을 어떻게 평생 하셨을까 싶었다. 식구나 적었으면 몰라.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는 건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 지금도 설거지할 때 하는 단골 생각들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 모든 게 하나도 당연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또 슬퍼졌다.
자라며 먹었던 음식은 정말 대단하다. 기억하지 않는 것 같지만 몸에 완전히 각인되어 불쑥불쑥 옛 맛을 찾게 된다. 자라며 할머니가 해주신 몇 가지 음식을 그대로 만들고 있다. 깊숙한 곳에서 꺼내 챙겨주시는 고소한 참기름 한 병과 꼬순내가 진동하는 깨소금, 매콤하고 색도 빠알간 고춧가루로 말이다. 강된장이나 경상도식 빨간 소고깃국, 지진 호박나물 같은 것들. 할머니는 이제 뭘 만들어도 맛이 없다 하시는데 나는 그걸 먹으려고 용을 쓰니 할머니는 그게 그렇게 웃기신가 보다. 그렇지만 내게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흔적들은 바로 그런 것들이다. 할머니와 함께 살지 않았다면 몰랐을 음식의 맛과 할머니만 쓰시던 말과 농담들, 이제는 피식 웃음이 나는, 약간 의심이 되는 할머니 식의 사랑 말이다. ^^
작년의 어느 날은 갑자기
"너무 힘이 들면 일 그만두고 집에 와서 좀 쉬어라."
하시길래 놀랐다. 힘들다고 한 적도 없고 현실적으로 그만두고 할머니 집에 들어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말이다.
어떻게 되겠지 뭐, 하시는데 그게 참 위안이 됐다.
여든을 훌쩍 넘기신 할머니는 이제 매니큐어도 바르지 않으시고 염색도 하지 않으셔서 백발이지만 화장은 지금도 하신다. 내가 화장하는 걸 옆에서 구경하시고 내 틴트를 탐내신다. 여전히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내 몸 사이즈에 관심이 많으시다. 살찔까 봐 그렇게 걱정이시면서 왜 한 시간마다 밥을 먹으라 그러시는 걸까... 이제는 좋은 남자 있으면 결혼하는 것도 괜찮다 시며 자꾸만 남자 친구 안부를 물어보시고, 평생 안 하시던 '사랑해'는 언제 그렇게 연습하셨는지 경상도 손녀는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된다. 달라졌다. 할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