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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서가 Oct 27. 2022

모순적인 마음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를 읽고

단순히 난 글 읽는 걸 좋아하니까 쓰는 것에도 관심 있어서 읽어보고 싶었다. 사실 내가 작가도 아니고 특별히 공감할 것 같다는 기대보다는, 제목처럼 내가 읽는 책들을 쓰는 작가들이 글쓰기라는 '업'에 대해서 느끼는 모순적인 감정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너무 많이 공감해버린 것. 


먹고살기 위해 불가피하게 경쟁해야 하는 일은 다른 데서 찾고 글쓰기는 전처럼 나의 친구로 둘 것이다. 음악이 그랬던 것처럼, 글도 밥벌이로 소모되어 사라져 버리지 않도록 할 것이다. Ι p.64 이석원


특히 이석원 님의 글은 요즘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생각과 딱 맞물렸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새 돈벌이가 되고 내 취향을 돈벌이로 계속 소모하다 보면 싫어지는 순간이 온다. 좋아하는 마음이 대체 왜 소모되는 걸까. 좋아하는 만큼 다시 극복될 가능성도 있지만 싫어지는 순간이 오면 갈 길을 잃은 느낌이 들고 그럴 때 난 나를 조금 원망한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채로 즐기지 못하고 먹고사는 일 따위의 궁색한 일에 동참시키다니. 그렇지만 먹고사는 일이 아무리 궁색하다 하여도 먹고사는 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렇게 밥벌이로 전락한 내가 좋아하는 일은 어느새 은근슬쩍 본업으로 둔갑하고 반짝 잘 나가는 듯하다가 창작은 역시 배고픈 일이라는 것을 절감할 때면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알다가도 모르겠다며 땅을, 아니 컴퓨터 책상을 손바닥 벌게지도록 치고, 인간이라면 후회는 당연히 하는 것이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다 했던 내가 조금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취미는 절대 취미로 두리라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나조차 싫다. 그래서 요즘은 다시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둘 수 있기를, 그러니까 업이 아닌 일로 되돌려야 할까 고민을 하고 있다. 이석원 작가처럼 채 준비되지 않은 다짐을 하는 중이다.


이랑 작가의 글은 많은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기계적으로 외워야 하는 입시미술에 대한 것부터. 내가 다녔던 학원은 여타 학원들이 마치 공식처럼 외워가며 그림을 그리게 하고 각목으로 두드려 패 가며 외우게 할 때 정 반대로 교육하는 학원이었다. 배울 때는 좋았지만 1차 지망에서 당연히 붙었어야 했던 것을 예비 1번으로 떨어지고 2차 3차는 다 좋아하는 돼지국밥인 양 말아먹고 방황했다. 기계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면 그렇게 말아먹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제는 피식 웃음이 나오는 기억이다. 참고로 1차 때는 내가 최고조였을 때라 아폴로를 멋들어지게 그렸고, 2차 때는 정면 줄리앙을 왕눈이로 그렸다. 사진 찍어 갔더니 선생님이 왕눈이를 그려놨네? 하고는 잘 그렸다 못 그렸다 더 이상 평가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말씀하셨고 3차 때는 더 동굴을 파며 가장 멋있다는 45도 줄리앙을 멍한 줄리앙으로 그려놓고 내 입시를 마무리했다.......  글을 쓰는 중에 요구사항을 들으면 그때부터는 쓰기가 싫다는 이랑 작가의 말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도 자연스레 디자인 회사로 취직하지 않았던 것은 내 쪼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요구대로 작업하고 요구대로 수정을 반복하며 파일명 수정, 수정 수정, 최종 수정, 최종 진짜 최종으로 저장하는 일이 싫었다. 물론 아주 극소수지만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처음 다닌 회사가 내 시간을 너무도 무용하게 만드는 회사였기에 더 그랬다. 지금 하는 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지금은 내 만족 때문에 그렇게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듣기 싫고 하기 싫은 거 안 하고 싶어서 프리랜서의 지옥으로 겁도 없이 뛰어들었다. 과거의 나를 지금의 내가 말릴 수 있는 방법은 진정 없나? 없을 것이다. 결국 사람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되어있다.


이것이 지금 책 리뷰인가 내 삶의 중간 전기인가....... 너무 공감하고 생각이 많았기에 이렇게 되었다. 이 책에는 직업으로 글을 쓰는,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들의 솔직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분명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기에 글을 써야 함에도 글을 쓰기 싫은 그 모순적이고도 너무나 이해되는 마음들이 말이다. 제목부터 딱 와닿지 않는가. 그래, 모든 것은 모순이야. 그게 좋아하는 일일지라도. 정말 멋진 책이다. 기대 이상이었다. 책을 몇 권씩 출간한 사람들도 글은 어렵다. 아니 일은 어렵다. 하물며 난 책 읽고 리뷰 꼬박꼬박 쓰는 것도 어려운데 안 어려울 리가 있겠나.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내 직업, 내가 좋아하는 취미로 대입해서 읽으면 누구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글쓰기가 아니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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